직급 연한 없앤 삼성.. '30대 임원, 40대 CEO' 가능해진다

박건형 기자 2021. 11. 2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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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인사제도 어떻게 바꾸나]
지금까지는 직급 단계별로 8~10년 채워야 승진 가능
본인과 부서장 외엔 직급 몰라.. 서로 존댓말 사용을 원칙으로
5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다른 부서로 이동 요청 가능

삼성전자가 29일 발표한 인사제도 개편안의 핵심은 직급별 표준 체류 기간 폐지다. 사원·대리급에서 과·차장급으로, 또다시 부장급으로 승진하기 위한 최소 연차 기준선을 없앤 것이다. 지금까지는 단계별로 8~10년을 채워야 다음 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연차 상관없이 능력으로만 승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각 팀을 책임지는 팀장급 임원들이 부하 직원들의 승진을 직접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사장과 전무 직급을 합친 것도 우수한 임원이 더 빨리 승진해 CEO가 될 수 있도록 직급 단계를 줄인 것이다. 삼성은 이를 ‘삼성형 패스트트랙(Fast-Track)’이라고 했다. 새 인사제도는 내년 초 삼성전자에 우선 시행된 뒤 전(全) 계열사로 확대될 전망이다.

◇상위 10%만 상대평가… 절대평가 병행

고졸 사원부터 부장급으로 구성된 현행 4단계 직급은 그대로 유지된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앞서 지난 2017년 3월 인사 개편에서 7단계였던 직원 직급을 4단계로 간소화한 바 있다. 하지만 본인과 부서장 이외에는 직급 확인이 불가능하고 매년 2월 말 발표하던 승진자 명단 공개도 없어진다. 서로 어떤 직급인지 모르기 때문에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은 ‘상호 존댓말 사용’이 원칙이다. 삼성 관계자는 “2017년 당시 ‘님’으로 상호간 호칭을 정리했고, 이후 ‘프로’ 호칭도 병행해 사용하고 있다”면서 “조직별로 문화와 업무 특성이 따르기 때문에 특정 호칭을 강제하기보다는 존댓말이라는 원칙만 제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픽=백형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높았던 평가·보상 체계도 개선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고성과자(EX·Excellent)를 비롯한 다섯 단계의 평가 등급 비율을 명확하게 정해놓은 완전 상대평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EX 등급만 10%로 정하고, 나머지 등급은 팀장 재량에 따라 자유롭게 부여하는 절대평가를 병행한다. 팀이나 개인이 당초 설정한 목표에 따라 상위 10%를 제외한 모두가 최하등급 또는 상위등급을 받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절대평가가 도입되면, 평가자는 개개인의 업무 성과를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연차에 좋은 등급을 준다거나, 연속으로 좋은 등급을 받기 힘들다는 직원들의 불만을 반영한 방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상급자가 하급자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하려던 ‘동료 평가제(피어 리뷰)’는 당장 적용하지 않고 테스트 기간을 거치기로 했다. 같이 일한 동료들이 등급을 매기는 대신 업무 기여도를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방식이다.

우수 인력은 정년인 60세 이후에도 계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근무할 수 있는 ‘시니어 트랙’ 제도도 도입한다. 삼성전자는 “고령화와 인구 절벽 같은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축적한 기술력과 경험의 가치가 존중받는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다.

이 밖에 5년 이상 근무한 직원은 다른 부서로의 이동을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는 사내 FA(프리에이전트) 제도, 국내 및 해외법인의 젊은 우수 인력을 선발해 상호 교환 근무하는 ‘스탭 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전국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를 설치하고, 사내에도 카페·도서관형 자율근무 공간도 조성한다.

◇수년에 걸쳐 개편안 만들어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보상 제도 개편안은 수년에 걸친 사내 연구와 해외기업 벤치마킹, 임직원 온라인 토론회, 노사협의회·노조 의견청취 등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다. 특히 새 인사제도에는 ‘뉴삼성’으로 도약하려면 일하는 문화부터 미래지향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최근 북미 출장길에서 돌아온 직후 기자들에게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직접 보고 오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또 미국 출장 중에는 현지 임직원들에게 “우리의 생존 환경이 극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털어놓은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은 평소 실리콘밸리식의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삼성전자가 새 인사제도를 도입하면서, 국내 다른 대기업들도 보다 공격적인 인사·보상 제도 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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