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사상 처음..포항 김기동 부자의 '감격'

황민국 기자 2021. 11. 2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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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감독, 아들은 선수로

[경향신문]

아버지 번호 6번 겹친 66번 달고
김준호, 지난 28일 ‘지각 데뷔전’
“아버지 출전 기록 깨겠다” 각오
김 감독 “철저히 실력으로 평가
포항의 철인으로 자리매김하길”

프로축구 포항 스틸러스가 인천 원정에 나선 지난 28일 그라운드에선 평소 익숙지 않은 선수들이 적잖았다. 포항이 지난주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가 알 힐랄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을 치렀던 터.

일찌감치 1부 잔류를 확정지은 김기동 포항 감독(50)은 아깝게 우승 문턱에 넘어진 기존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한편 벤치 멤버와 신인들에게 기회를 줬다.

프로에선 흔한 일이지만 감격의 데뷔전을 치른 새내기 3총사(노경호·김준호·조재훈)에 김 감독의 아들인 미드필더 김준호(19·사진)가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축구 선수 2세는 흔하지만 K리그에서 아버지가 감독, 아들은 선수로 한 팀에서 뛰는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김 감독은 29일 통화에서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평가했다. 아들이라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주변의 조언에 생각을 바꿔 선발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현역 시절 등번호(6번) 2개를 겹친 66번을 달고 뛰는 김준호는 실력으로 자리를 쟁취했다. 초·중·고교를 모두 포항 유스에서 보낸 김준호는 누구보다 포항의 축구 철학을 잘 알고 있다. 이날 김준호는 중원을 부지런히 누비는 동시에 인천의 골문을 두드리는 공격적인 면모까지 뽐냈다. 두 차례 슈팅이 모두 골문을 향하는 유효 슈팅일 정도로 날카로웠다. 포항제철고 졸업 학년이던 지난해 K리그 유스 챔피언십과 부산 MBC 전국고교축구대회 결승전에서 모두 결승골을 터뜨린 솜씨는 프로 무대에서도 빛났다.

포항 스틸러스 김기동 감독(왼쪽)이 현역에서 은퇴한 2011년 아들인 김준호군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김기동 감독 제공

김 감독은 “준호가 찬스를 찾아들어가는 재주가 있다. 체구가 작던 어린 시절 볼을 빠르게 처리하는 습관이 장점이 됐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원래 미드필더는 카메라에 비춰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카메라에 잡힐 정도면 공을 질질 끈다는 소리다. 준호는 그럴 일이 없는 선수로 키웠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이 아들의 습관을 반기는 것은 본인도 반 템포 빠른 판단으로 부상을 줄여 K리그에서 롱런(통산 501경기 출전)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자신에게 붙기 전에 볼을 다루면 공격의 템포도 빨라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아들 앞에선 그 아빠 미소를 맘 편히 보여줄 수 없다. 올해 포항 유니폼을 새롭게 입은 신인만 무려 11명이다. 기존 선수들까지 배려해야 하는 감독 입장에선 아들에게 더 냉정하게 다가서야 했다. 김 감독은 신인들에게 기회를 줄 때 ‘누가 더 팀에 필요하냐’를 기준으로 삼았고, 그 결과 아들보다 다른 선수들에게 먼저 데뷔전의 영광을 안겼다. 실제로 이호재(14경기 2골)가 개막전부터 출전한 것을 비롯해 김륜성(13경기)과 이석규(5경기)가 순서대로 그라운드를 뛰었다. 김 감독은 “아내는 다른 선수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키우면 된다고 하더라. 다행히 준호도 잘 견디며 싸워줬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김준호가 이번 데뷔전을 계기로 자신처럼 포항의 철인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랄 따름이다. 김준호가 고교 시절 갑자기 신장(1m82)이 13㎝나 자라면서 잠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젠 어디서나 통하는 피지컬을 갖췄기에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김준호는 “데뷔전에선 부족한 게 너무 많았기에 아쉽다. 실력을 더욱 갈고 닦아 아버지의 출전 기록을 깰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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