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찌질한' 이준석 대표님
[경향신문]
#1. “선거 때가 되니까 또 슬슬 이런저런 범죄를 페미니즘과 엮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이런 잣대로 (전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고유정 사건을 바라보고 일반화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 프레임은 2021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으면 한다.”(11월21일 페이스북)
#2. “국민은 남성과 여성에 관계없이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킬 경찰공무원 임용을 기대한다. 치안활동 시 제압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체력검정 등은 성비를 맞추겠다는 정치적 목적으로 자격조건을 둬선 안 된다.”(22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
#3.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영입한다면 반대한다. 만약 그런 영입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 당이 선거를 위해 준비했던 과정과 방향이 반대되는 것이다.”(23일 조선일보 유튜브 채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이하 호칭 생략)의 발언들이다. 첫 번째는 스토킹으로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피습당해 숨진 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여성 안전을 촉구하자 나온 반응이다. 장혜영은 “헤어지자고 말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여성들의 참혹한 죽음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준석은 교제 살인을 고유정 사건과 비교하며 장혜영의 주장을 “스테레오타이핑”과 “선동”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교제 살인과 고유정 사건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야말로 ‘궤변’이자 ‘선동’이다. 교제 살인은 한국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새로운 구조적 범죄다. 오죽하면 ‘안전이별’이란 신조어가 등장했겠는가. 이준석은 고유정 사건 탓에 연애·결혼에 공포감을 갖게 된 남성을 단 한 사람이라도 알고 있나.
두 번째는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사건’ 당시 경찰의 현장 이탈 사태를 언급한 것이다. 사건 직후 여성 경찰관을 겨냥한 이른바 ‘여경 무용론’이 유튜브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준석은 ‘여경’이란 용어를 직접 쓰지 않았으나 “성비를 맞추겠다는 정치적 목적”을 언급하며 여경 무용론에 사실상 힘을 실었다. 역시 궤변이자 사실관계 왜곡이다. 경찰 체력검정은 2026년부터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기준으로 치르기로 확정된 터다. 또 인천 사건 당시 여성 경찰관은 교육을 마치고 배치된 지 7개월밖에 안 된 시보 신분이었다. 함께 출동했던 남성 경찰관은 19년차였으나 현장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남경’ 논란은 없었다. 과거 ‘대림동 여경’ 사건 때와 판박이다. “남성 경찰관들이 처했던 유사한 상황은 ‘공권력 경시 풍조’ 문제로 진단되었고, 그들이 범죄와 연루되었을 때조차 남성 경찰관 집단의 직무 역량이 도마에 오르지는 않았다.”(<능력주의와 페미니즘>)
세 번째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의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영입설에 대한 반응이다. 이수정은 여성·아동의 안전과 인권 보호에 힘써온 전문가다. 2019년 영국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에 오른 ‘셀럽’이기도 하다. 2030 여성 지지가 취약한 윤석열 대선 후보 입장에선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모셔야 할 인사다. 그럼에도 이준석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은 일부 ‘안티 페미(니스트)’ 남성들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윤석열은 이준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9일 이수정 선대위원장 영입을 발표했다. 이준석은 이날도 방송에 출연해 “우리 지지층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뒤끝을 드러냈다. 윤석열이 이준석보다는 나아 보인다.
지난 6월 이준석이 당대표로 당선됐을 때, 그는 ‘새로움의 담지자’로 비쳤다. 도도한 변화의 깃발을 치켜들고 순식간에 너른 중원을 휩쓸 기세였다. 5개월여가 흐른 지금, 그는 젊지도 새롭지도 않다. 기존 시스템의 일원이 된 듯 늙고 낡았다. 미답(未踏)의 영토를 개척하는 대신 ‘안티 페미’ 영토 사수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찌질하다.
이준석에게 권한다. 자신을 ‘준스톤’으로 숭앙하는 커뮤니티에 접속할 시간에, 예능 <스우파(스트릿우먼파이터)>와 <골때녀(골때리는 그녀들)>를 보라. 드라마 <원더우먼>과 <연모>도 괜찮다. 춤추는 모니카와 허니제이가, 공 차는 박선영과 송소희가, 검사 이하늬와 남장 세자 박은빈이 대중, 특히 2030 여성의 마음을 얻은 까닭을 들여다보길. 공당 대표로서 더 많은 주권자의 마음을 잡고 싶다면 말이다. 손바닥만 한 안티 페미 봉토(封土)의 ‘소영주’로 만족한다면 패스!
김민아 논설실장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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