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보령 해저터널
[경향신문]
한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는 원래 섬이 아니었다. 태안반도에 연결돼 남북 24㎞, 동서 5㎞로 좁고 길게 뻗은 곶이었다. 그러다가 조선 인조 때인 1638년 안면도 북쪽 천수만과 서해 사이에 운하를 만들면서 섬이 됐다. 호남에서 세금으로 거둔 쌀을 실은 조운선이 안면도 앞바다에서 자주 침몰하자 항로를 천수만으로 우회하기 위해 운하를 만들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만발하는 안면도 꽃지해수욕장 남쪽에 ‘쌀썩은여’라는 지명이 있다. 암초에 부딪혀 파선된 조운선에서 쏟아져나온 쌀이 바닷속에 쌓여 썩을 정도로 풍랑이 잦았다는 뜻이다.
충남 보령시 신흑동 대천항과 오천면 원산도를 연결하는 보령 해저터널이 12월1일 개통된다. 순수 해저 구간 5.2㎞를 포함한 6.927㎞ 길이로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보령 해저터널이 개통되면 2019년 말 완료된 보령~태안 2공구(원산도~태안군 안면도)와 연결돼 대천에서 안면도 영목항까지 운행거리는 81㎞, 소요시간은 80분 단축된다고 한다.
보령 해저터널 공사는 해수면에서 80m, 바다 밑 55m 깊이 암반에 화약을 폭발시키면서 터널을 뚫어가는 난공사였다. 1일 최대 공정이 3m에 불과했다. 2010년 12월 착공해 만 11년이 걸렸다. 총사업비는 4881억원으로, 1m를 뚫는 데 7046만원이 든 셈이다. 시공사인 현대건설 관계자는 “토목공사 중 최고 난도로 꼽히는 게 해저터널”이라면서 “석탄이 포함된 함탄층은 암반이 약해 별도 발파작업 및 보강공사를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편안 안(安), 쉴 면(眠)자를 쓰는 안면도는 ‘소나무숲이 편히 잠자는 섬’ 또는 ‘조운선 난파 걱정 없이 잠들 수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그러던 안면도가 1970년 안면대교로 북쪽과 연결되더니 이번에는 해저터널 개통으로 남쪽 육지와 이어지게 됐다. 섬에서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셈이다. 해저터널 개통과 함께 안면도가 개발에 대한 기대와 우려로 들썩이고 있다. 충남도는 이곳을 사계절 명품 휴양지로 조성하겠다고 나서고,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해저터널 호재’ 딱지를 붙인 매물을 내놓고 있다. 안면도가 ‘잠들지 못하는 섬’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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