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이 다른 고비"라더니..경제 앞세워 사실상 '맹탕' 방역정책
[경향신문]
정부가 29일 발표한 ‘특별방역대책’은 코로나19 백신 추가접종에 최대한 속도를 내면서 현 단계적 일상회복 1단계를 사실상 4주간 연장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결국 경제 활성화쪽에 힘을 실은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심을 고려한 조치로도 해석된다. 하지만 이같은 느슨한 대책이 4주 후 방역에 어떤 부담으로 돌아올지는 전망이 밝지 않다. 정부가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상황이 나빠져 의료대응 역량, 예방접종 등에서 따라잡지 못할 경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도 있다.
정부는 29일 지난주 코로나19 유행 위험도가 전국 단위에서 ‘매우 높음’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현 상황을 “차원이 다른 고비”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내놓은 대책은 이미 예견된 ‘방역패스 유효기간 6개월 설정’ 등 일부 조치를 빼면 기존 대책의 짜깁기에 가깝다.
대책의 중심은 병상 확충과 추가접종·청소년 접종 시행이다. 이달에만 세차례 발동한 행정명령을 통해 병상을 차질 없이 확보하고, 기존에는 선택사항이었던 재택치료를 코로나19 치료의 기본으로 설정해 입원 환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18~49세를 대상으로도 추가접종을 실시하고 다음달 20일부터 기본접종 후 6개월의 방역패스 유효기간을 두기로 했다. 노래연습장, 실내체육시설, 목욕장, 유흥시설 등 고위험시설을 이용할 때 기본접종 후 6개월이 지났는데도 추가접종을 하지 않았다면 ‘접종완료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 이밖에도 영화관 실내취식 시범운영 중단, 요양병원·시설 미접종 종사자의 환자 접촉 업무 배제, 추가접종자만 경로당·노인복지관 이용 허용 등을 시행한다.
수도권의 사적모임 규모를 축소하거나 식당, 카페의 미접종자 인원을 축소하는 방안, 또는 방역패스 적용대상을 18세 이하 청소년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채택되진 않았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시설 중심의 관리대책뿐만 아니라 일상공간 어디에서든지 사람 간에 접촉을 줄이는 거리 두기가 실천되는 게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작 거리 두기 조치는 없었다. 국민 불편과 민생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지난주 일상회복지원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영업자들의 반발이 심해 결론을 내지 못했다”며 “다시 논의를 거쳐 이번주 안에 후속 조치를 발표할 것”이라며 추가 논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현재 수준의 대책으로는 실질적인 유행 억제와 위중증·사망 규모 감소 효과를 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곧장 효과를 내긴 어렵다며 시민들의 ‘자율적 거리 두기’에 기대는 상황이다.
정통령 중앙방역대책본부 총괄조정팀장은 “지금 발생한 확진자들 가운데 일정 비율이 1~2주 후 위중증 또는 사망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조치들을 취한다 해도 병상 가동률이 바로 호전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며 “유행 억제의 경우 정부 정책 외에도 국민들이 얼마나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자율적으로 거리두기를 실천해주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에 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비판을 쏟아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맹탕인데다 재택치료에 덤터기를 씌웠다”며 “그게 감당이 되고 쉬울 것 같았으면 이미 지자체가 다 받았다. 안되니까 이렇게 환자가 (병상 대기로) 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환자는 계속 늘 수 밖에 없는데 정부는 큰 사건이 터져야 안되겠다, 잠시 멈춥시다 할 것”이라며 “마스크를 벗는 장소에서의 방역패스 적용은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탁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민들이 3차 접종에 얼마나 호응할지 예측하기 어렵고 3차 접종이 진행되는데 최소 1~2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12월과 1월에 보건의료 영역의 큰 피해가 우려된다”며 “상황이 심각하다는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추가적 조치가 없는 점은, 현 상태가 여전히 여유가 있다고 국민들이 오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고 했다.
노도현·이창준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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