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시대 '시니컬한 위로'.. "그래도 결국은 사랑이다"

권이선 2021. 11. 29.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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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집 '영원한 사랑' 들고 온 자우림
비극·희망 공존하는 새 앨범 완성
김윤아 "우리도 허무·상실·고립감
오랜 번아웃으로 안 아픈 곳 없어
12곡, 마지막 작업이래도 후회 안해"
정규 11집 ‘영원한 사랑’ 발매를 앞두고 화상으로 만난 자우림. 왼쪽부터 베이시스트 김진만, 보컬 김윤아, 기타리스트 이선규. 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장면도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가 있다. 자우림의 신보 ‘영원한 사랑’도 그렇다. 1번 트랙부터 12번에 이르기까지 화자의 숨소리를 가만히 느끼다보면 어느새 50분이 흘러가있다.

감정은 때로는 가랑비처럼 젖어들고, 때로는 파도처럼 집어삼키다 또 움켜쥘 수 없게 흩날린다. “밤하늘의 별들도 서로 닿을 수 없는 슬픔에 떠는데, 세상에 흩어진 우린 별과 별처럼 멀리 있어.(중략) 그러니 말해줘,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페이드 어웨이’·FADE AWAY) 구슬피도 말한다. 어떤 외로움은 혼자 삭일 수가 없다고.

앨범이 흐르는 동안 영원에 대한 갈구는 “영원한 사랑 따위”라는 냉소로, “내일은 너무 멀어, 지금 바로 여기 있어줘” 애원으로, “Come back to me(내게 돌아와)” 부르짖음으로 커져간다.

“불행한 날도 있겠지/ 그래도 우린 함께 있겠지/ 언제까지라도/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맞잡은 손을 놓지 않고/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같은 길을 걸어가며”(‘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그래도 결국은 사랑이다. 내민 손을 잡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함께 걷는다. 어떤 외로움은 혼자 삭일 수가 없기에.

자우림의 정규 11집은 ‘앨범의 미학’을 보여준다. 첫 곡은 마지막 곡으로 이어지다 다시 처음으로 흐른다. 빠른 호흡의 미니 앨범이나 싱글과는 다른 깊은 여운과 서사를 선사한다.

“팬데믹이 찾아온 2021년을 거치면서 은유가 아닌, 직접적으로 지금의 우리 모습을 표현한 노래가 ‘페이드 어웨이’예요. 직접 볼 수 없고 떨어져 있어야 하는 세상에서 저희도 다른 분들과 똑같은 허무함·상실감을 느꼈죠. 고립감도 당연했습니다. 팬데믹이 시작되던 무렵 저는 오래된 번아웃으로 공기에서 먼지 맛을 느꼈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사실은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절망감에 압도되곤 했습니다.”(김윤아)

지난 26일 발표된 이 앨범은 애초 지난해 11월에 선을 보일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뒤덮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 속에 멤버들은 고민 끝에 앨범 발매를 늦췄다. 최근 화상으로 만난 자우림은 “11집의 첫 단추인 ‘페이드 어웨이’를 시작으로 엮어 나간 어두운 곡을 현실적인 절망과 불안에 빠져 있는 세상에 내놓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대신 멤버들은 지난해 7월 미니앨범(EP) ‘홀라!’(HOLA!)를 발표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힘을 북돋웠다.

적당한 때를 기다려 오던 그들은 곡 일부를 수정하면서 자우림만의 색깔로 앨범을 다시 채웠다. 비극과 희망이 함께한다. 팬데믹 시기 우리의 모습처럼. 김윤아는 “‘영원한 사랑’이라는 (앨범) 타이틀 자체가 아이로니컬한 제목이다. 동명의 수록곡은 후렴구에서 ‘영원한 사랑 따위’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영원한 사랑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변치 않는 사랑을 평생 찾아나선다. 그런 시니컬한 면이 자우림과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발매하는 앨범마다 큰 사랑을 받아온 이들이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있다. 새로운 앨범은 늘 전작보다 좋아야 한다는 것. 전작보다 좋지 않을 때 ‘은퇴’하겠다고 말할 정도. 세 멤버는 이번에도 그 목표를 위해 작업을 거듭했다고 한다.

김윤아는 “내가 고집해서 총 12곡을 수록했다”며 “힘든 길을 선택했지만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게 자우림의 마지막 앨범이라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며 웃었다. 이선규는 “개인적으로 전 정규앨범 발매를 반대했다. 저희가 앨범을 내면 10곡 중 8곡 정도는 잊혀지는 노래가 많다. 그게 좀 아까워서 계속 싱글이나 EP 형식으로 내자고 했지만, 하다보니 곡이 계속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 앨범이 됐다. 저희에게는 일종의 버릇이고, 어쩌면 다들 이걸 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앨범을 한 장 한 장 만든다는 기쁨도 있지만 뮤지션으로서, 자우림의 팬으로서 새로운 음악을 듣는다는 기쁨도 굉장히 크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자우림이라는 밴드의 묘비명엔 ‘샤이닝’의 가사를 적어 달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 11집 ‘영원한 사랑’은 전곡을 묘비명에 적어도 될 정도입니다. 흔히들 마지막 앨범이라는 각오로 준비했다고들 하는데 정말 마지막 앨범이더라도 자우림이라서, 자우림과 함께라 좋은 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들어 갈 거예요.”(김진만)

내년 25주년을 앞두고 있는 자우림. 보컬, 기타, 베이스. 서로 다른 역할과 캐릭터의 이들을 하나로 모으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김윤아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좋은 동료”라고 말했다. 새로운 멤버를 찾고 일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선규의 말에 멤버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한참 웃기도 했다.

“음악하는 사람들끼리 ‘취미로 하는 게 제일 재밌다’고 말하곤 해요. 우리 셋 다 일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취미에 가까운 듯 그렇게 함께 해와서 오래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이선규)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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