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 확산은 불평등이 낳은 결과"..과학자들 "아프리카 고립시켜선 안돼"

조승한 기자 2021. 11. 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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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백신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들. EPA/연합뉴스 제공

미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들이 자국민 접종을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을 싹쓸이한 것이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불렀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처음 보고된 남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은 백신 1회 접종률이 5~37%밖에 되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오미크론 변이를 빠르게 찾아내 보고한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정작 전 세계로부터 봉쇄 조치를 당하고 있다며 그들의 행동이 경제적 손실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미국 CNN은 28일(현지시간) “과학자들은 백신 불평등으로 오미크론 변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고 보도했다. 백신 접종률이 낮고 전염률이 높은 곳에서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마이클 헤드 영국 사우샘프턴대 글로벌헬스 선임연구원은 “세계가 백신 접종을 너무 느리게 한 데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인구가 많고 대규모 감염에 약하다”고 말했다.

오미크론 변이는 남아공과 보츠와나 등 남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호주,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 등 다른 국가들로 이미 확산한 상황이다. 보건 비영리연구재단 웰컴트러스트의 이사인 제레미 파라는 “새 변이가 왜 세계가 백신과 보건 도구에 공평한 접근을 보장해야하는지 보여준다”며 “불평등이 팬데믹을 연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7일까지 8개국 중 1회 이상 백신을 접종받은 인구 비율은 보츠와나가 37%로 가장 높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8%, 짐바브웨는 25%로 나타났다. 말라위가 5.6%로 가장 낮았다. 전 세계의 1회 접종률은 54%다. 반면 WHO에 따르면 고소득 국가의 63.9%가 1회 이상 접종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디언에 따르면 주요 20개국은 지금까지 생산된 백신의 89%를 사들였고 앞으로 공급될 물량의 71%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제한조치를 내린 남아프리카 8개국의 백신 접종률이다. 밝은 초록색은 2회 접종한 이들의 비율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 제공

선진국들이 백신을 독점해 발생한 백신 불평등이 새로운 변이 발생의 화근이 됐다는 지적이다. WHO의 세계보건자금조달 대사인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는 26일 가디언 기고에서 “보건 지도자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공급하지 못한 우리의 실패가 다시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며 “우리는 미리 경고를 받았지만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선진국들은 백신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부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월까지 92개 빈국을 대상으로 40% 백신 접종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9월 발표했지만 현재 최소 82곳에서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현재 약속한 백신의 25%만 전달한 상황이다. 브라운 전 총리는 “나머지 세계에서 실패를 계산하는 것은 더욱 창피하다”며 “유럽연합은 19%, 영국은 11%, 캐나다는 5%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오미크론 변이 정보를 빠르게 공유한 남아프리카 국가들은 WHO가 26일 오미크론 변이를 우려 변이로 지정하자마자 각국으로부터 국경 봉쇄 조치를 당하고 있다. 한국도 27일 오미크론 발생 국가인 남아공과 인접국가인 보츠와나, 짐바브웨, 나미비아, 레소토, 에스와티니, 모잠비크, 말라위 등 8개국을 방역강화국가로 지정해 이곳에서 온 사람들은 10일간 격리하도록 했다.

과학자들은 아프리카 과학자들이 발빠르게 변이를 찾아내고 정보를 공유하는 활동이 아프리카 지역의 경제적 손실이라는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면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에 대한 연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대가 없이 전염병과 관련한 데이터를 공유한다. 그러나 데이터를 공유함으로써 오히려 제재를 당하게 되면 과학자들이 굳이 데이터를 공유할 필요가 없었다는 후회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프리 베럿 영국 웰컴트러스트 생어연구소 코로나 유전학 연구소장은 28일 가디언에 “오미크론 변이 데이터를 공유한 아프리카 과학자들의 활약은 영웅적이었다”며 “그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보츠와나와 남아공 과학자들은 23일 웰컴생어연구소의 게놈 공유 데이터베이스에 오미크론 변이 데이터를 올림으로써 오미크론 변이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24시간 내로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어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서 이어진 변이인지를 찾아내 공유했다. 남아공에서 수집한 추가 연구 결과들이 발표되자 WHO는 오미크론 변이를 26일 우려 변이로 지정했다. 여기에 걸린 시간은 72시간에 불과했다.

남아공에서 코로나19 변이 게놈 분석을 이끈 툴리오 드 올리베이라 남아공 전염병 대응 및 혁신 센터(CERI) 소장은 26일 트위터에 “세계는 아프리카를 지원해야 하며 차별하거나 고립시켜서는 안된다”며 “남아프리카를 보호하고 지원해야 우리가 세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베럿 소장은 “새로운 위협을 이해할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 제한이 불가피할 수 있지만 여행 금지는 영향을 받는 국가 사람들과 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며 “이전에도 새로운 변이의 확산을 지연시켰지만 막지는 못했다”고 지적했다.

베럿 소장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오미크론 변이를 이해하기 위해 움직이고 각국 정부가 대응 계획을 세우는 동안 우리는 남아프리카에서 제공한 조기 경보를 보상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며 “백신 접종률이 높고 백신과 의료진 등 의료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오미크론과 대결에 최전선에 있는 국가가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영웅적으로 데이터를 공유한 과학자들의 용기에 세계가 고립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면 그것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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