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보다 '진짜' 음의 소득세가 낫다
[왜냐면] 최일영(가명)
이번 대통령 선거는 기본소득을 브랜드로 내세우는 이재명 후보가 나섰다는 점에서, 적어도 정책 대결에 있어서는 ‘기본소득’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은 연 100만원 수준의 소액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방안이고, 보수 후보들의 공약은 대체로 소득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방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빈곤 해소’라는 측면에서는 음의 소득세가 이재명식 기본소득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이재명식 기본소득이 보편지급을 위해 충분성을 포기한 반면, 음의 소득세는 저소득층을 선별하여 집중 지원하기 때문이다. ‘송파 세모녀’의 경우 전자라면 월 25만원 정도, 후자라면 150만원 안팎을 받게 된다.
기본소득 진영에서는 음의 소득세가 ‘선별복지’라고 비판하지만, 우리 사회의 절대빈곤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시점에서는 음의 소득세가 정책적인 차원은 물론이고 진보적 차원에서도 더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생계의 위협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선별이냐 보편이냐’는 이론적 논쟁은 아무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반면 보수 진영의 문제는 진정성이 없다는 데 있다. 음의 소득세는 절대빈곤을 해소할 수 있는 수단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지금의 복지제도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것이다. 소득 수준에 따라 생계비를 자동 지급한다는 점에서, 절대빈곤을 철폐하는 강력한 사회안전망의 기능을 갖는다. 한국에서는 기본소득론자들의 음해(?)로 오해되어서 그렇지, 엄연히 마틴 루서 킹 등이 주창했던 진보적이고 포용적인 방안이다.
이런 정책을 보수 정권이 시행한다? 그들은 ‘자유주의적 복지’로서의 음의 소득세를 강조하지만, 한국 보수의 본색은 알다시피 자유주의라기보다는 ‘우승열패’에 가깝다. 복지에 부정적인 전경련식 마인드가 주류다. 실제로 10여년의 보수 집권 기간 동안 복지의 문은 더 좁아졌고, ‘세모녀’ 사건도 그 기간에 있었다. 이들이 음의 소득세를 한다니.
문재인 정부에서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이행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엄밀히 말하면 폐지도 아니고 기준 완화다. 진보 정권도 복지 지출에 저항하는 경제 관료, 중산층 납세자들의 반감으로 복지 확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그래서 보편복지는 사실 중산층 납세자들에 대한 일종의 투항에 가깝다). 한국의 복지 현실에 비춰볼 때 혁명적인 진전이라 할 수 있는 음의 소득세는 부양의무제 폐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반발을 부를 것이다. 한국의 보수 정권이 이걸 돌파할 수 있을까? 경제 관료, 보수 언론, 납세자를 설득하고 제압해서 음의 소득세를 시행할 수 있을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현실 정치에서 천문학적 증세(완전한 기본소득을 위한)를 관철할 역량이 없는 기본소득론자들이 보편복지 도그마를 충족하고자 ‘(소액)기본소득’이라는 이름의 ‘무차별 현금살포’를 고집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복지 시계를 뒤로 돌리는 위험한 일이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이 극히 불평등하게 전가되는 상황에서 음의 소득세는 경제 약자들을 절대빈곤에서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이 될 수 있다.
세계의 진보적 열정이 가장 뜨겁게 달아올랐던 1969년, 폴 새뮤얼슨을 비롯한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보장소득’ 정책의 시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것은 소득에 따라 생계비를 지급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음의 소득세와 일치하는 방안이었다. 이념가들과 허언가들이 아닌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우리 사회의 ‘포용적 상식인’들이 목소리를 내기를 필자는 바란다. 그들이라면 ‘세모녀’와 ‘대구 간병청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이 무엇인지 옳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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