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 칼럼] 대선에서도 사라져버린 과학기술
대선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지극히 제한적인 관심이 고작이다. 과총을 비롯한 6개 과학기술계 단체들이 주요 정당의 대선 주자들에게 절박한 내용의 성명서를 전달했다. 과학기술의 혁신이 국가의 생존을 결정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어울리는 '과학기술 중심국가 비전'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하는 내용이다.
'과학기술 중심국가 비전'을 보여 달라는 과학기술계의 요구는 낯선 것이 아니다. 민주화 이후 계속된 요구다. 이번에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의 무한 경쟁이 기술 패권 경쟁 시대의 대전환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과학기술을 국정의 중심에 세우고,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과학자의 자율과 권한을 전폭적으로 보장해달라는 것이 핵심이다. 과학기술 시대에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다.
과학기술 정책이 표류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을 핑계로 도입한 PBS는 아직도 출연연을 짓누르고 있다. 벤처 광풍의 아픈 기억도 여전하다. 밀실에서 활개를 치던 '황금박쥐'가 어설픈 생명공학 강국의 청사진으로 온 국민의 넋을 빼앗기도 했다. 요란했던 녹색성장과 창조경제의 뒷맛도 개운치 않다.
정부의 대응이 거버넌스와 출연연의 개편에 한정되어 버렸다. 과학기술처와 연구회를 들었다 놓는 일을 반복했던 것이 고작이다. 결국 중심을 잃어버린 과학기술 정책은 리더십을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선무당들에게 포획되었다. 과학기술은 요란한 정권 홍보 수단으로 추락해버렸다.
과학기술계가 더 이상 공허한 대선 공약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대선 주자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믿을 것이 아니다. 어차피 대선 공약은 국가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할 능력도 없는 선무당급 폴리페서들이 선진국의 과학기술 정책을 표절해서 급조하는 졸작일 수밖에 없다. 어설픈 공약이 오히려 과학기술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빌미가 된다. 녹색성장·창조경제·탈원전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과학기술계의 리더십을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세계 최악의 빈국을 반세기 만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킨 우리 스스로의 역량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고 절망할 이유가 없다. 추격형 기술로 이룩한 성과라고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다. 우리 과학기술이 놀라운 경제·사회 발전의 주역이었다는 것은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투자에 비해 성과가 부족하다는 정책 전문가들의 평가는 의도적 편견일 뿐이다.
우리의 과학기술 정책을 선진국이 만들어놓은 '표준형'에 끼워 맞추겠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기술 패권을 노리는 선진국의 시도를 흉내를 내고, 줄을 서겠다는 시도는 비겁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꼭 맞는 'K-과학기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선진국의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대신 우리 사회와 과학기술계의 현실을 정확하고 꼼꼼하게 분석하는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3대 골프 스쿨에서 배운 표준형 스윙을 포기하고 자신의 체형에 맞는 독특한 스윙으로 명예의 전당에 당당하게 입성한 박인비 선수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의 혁신 정책을 어설프게 흉내 낸 추격형 '정책'으로 선도·창조형 '과학기술'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주는 과학기술이 필요하다. 중국발 요소수 대란에서 드러난 우리의 현실은 암울하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요소에 대한 엉터리 가짜 뉴스가 차고 넘쳤다.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소재강국을 만들겠다고 법석을 떨었던 소재 전문가들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탈원전으로 60년을 키워온 원전 기술이 붕괴되고, 탄소중립을 핑계로 공상과학 수준의 미래 기술이 판을 치는 현실을 걱정하는 과학자도 찾아볼 수 없다.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양떼몰이를 즐기고 있는 정치인·관료·정책 전문가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정한 과학기술 혁신은 요란한 '공약'이 아니고, '연구실'에서 실현되는 것도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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