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논쟁 제대로 읽기
[세상읽기]
[세상읽기] 이강국 |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팬데믹으로부터 회복 중인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인플레이션이다. 지난 10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에 비해 6.2%, 연방준비제도가 주목하는 개인소비지출 물가도 5%나 높아져 199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최근 인플레가 높다. 연준과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 주장해왔지만 빠른 물가 상승세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제 높은 인플레가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연준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재정확대 규모가 너무 크다며 경기과열을 경고했던 하버드대 교수 래리 서머스는 최근 칼럼에서 일시적 인플레 견해가 틀렸다고 강조했다. 인플레가 정부 전망보다 지속적이고 임금을 포함한 여러 부분들로 확산되고 있으며 기대인플레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경제자문회의 의장이었던 제이슨 퍼먼도 앞으로 인플레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연준의 통화정책은 너무 확장적이라며 정책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인플레를 진정시키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인플레이션을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전반적인 물가 수준의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가 심각해지면 경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확장적 거시경제정책을 거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인플레에 대응하여 통화공급을 줄이고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가 둔화되고 자산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높은 인플레 기대심리가 고착되면 197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이 악순환에 빠져 인플레를 누르기 어려운 상황이 나타날 수 있다.
팬데믹으로부터의 회복 과정에서 물가가 급속히 상승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백신 접종과 경제봉쇄 완화를 배경으로 억눌렀던 소비 수요가 커졌고, 정부의 대규모 재정 확장과 소득 지원이 이를 더욱 자극했다. 문제는 이렇게 수요가 커졌지만 공급망의 병목현상으로 상품의 충분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바이러스에 대한 우려와 양육의 부담 등으로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돌아오지 않아 노동시장 참여율도 위기 이전에 비해 낮은 현실이다.
특히 중요한 요인은 최근 국제결제은행 보고서가 강조하듯 수요의 구성 변화와 공급망 내 기업들의 행태 변화다. 팬데믹 이후 서비스에 대한 수요 회복은 느린 반면 내구재에 대한 수요가 급속하게 높아졌다. 예를 들어 2021년 3분기 현재 미국의 상품 소비는 위기 이전 추세와 비교하여 9%나 높지만 서비스 소비는 5%나 낮다. 이렇게 상품 수요가 갑자기 늘어날 때 기업들은 재고 부족에 대응하여 투입 요소의 주문을 늘리거나 미리 하고 사재기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소위 채찍효과가 전체 공급망의 병목현상을 더욱 심하게 만들어 높은 인플레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플레의 변화는 얼마나 빨리 팬데믹이 잦아들어 상품 소비의 증가가 상대적으로 둔화되고 공급 쪽이 정상화되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몇달은 상품에 대한 소비 증가세도 이전보다 둔화되고 있다. 일단 공급망의 병목현상이 완화되면 기업들은 반대로 행동하여 공급이 빠르게 확대되고 인플레가 낮아질 수도 있다.
크루그먼이 강조하듯 거시경제적으로 볼 때 미국의 국내총생산과 총수요는 여전히 위기 이전 추세에 비해 낮다는 점에서 현재 미국의 인플레를 전반적인 경기과열 때문이라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많은 상품들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있지는 않으며 장기적인 인플레 기대는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한 분석에 따르면 2021년 약 70%의 물가 상승은 주로 음식점과 호텔, 항공 등 경제 재개와 관련된 품목들과 자동차 등에 의해 설명된다. 총수요가 총공급을 자극하여 생산이 확대되고 자동화 등 혁신이 촉진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플레 압력은 더 낮아질 수 있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된다 해도 과도한 두려움과 섣부른 긴축은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팬데믹 이전 오랫동안 경제의 심각한 문제는 총수요 부족으로 인한 경기회복의 부진과 임금상승의 정체 그리고 불평등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현재 상황은 가격통제 해제와 억눌린 수요 폭발, 공급 부족 등으로 인플레가 2년 동안 높았던 2차 대전 직후의 상황과 유사한 모습이다. 인플레이션 앞에서 인내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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