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어떤 '민관협력'을 구상하는가

한겨레 2021. 11. 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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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바로세우기' 유감

[왜냐면] 김소연 | 시민사회 현장연구자·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정쟁에 시민단체를 희생양 삼는 구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을 넘었다. 이달 초 전국의 1170개 시민사회단체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민사회단체 폄훼와 예산 삭감’에 항의했다. 박근혜 탄핵 정국 때 이후 가장 많은 단체가 동참했다고 한다. 그만큼 분노가 크다는 의미다.

자극적인 표현을 걷어내고 보자. 오세훈 시장은 민간보조와 민간위탁 방식으로 방만하게 시민단체로 흘러간 돈을 바로잡아 ‘서울시의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시민단체는 가능하면 나랏돈을 안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밝혔다.

‘나랏돈’ 얘기로 시작하자. 세금은 공동체 전체의 안녕과 복지에 사용하도록 사회 구성원이 모은 돈이다. 복잡다단해진 사회문제는 ‘관’의 힘만으로 대처하기 어려워졌다. 하천 살리기, 인권 캠페인, 어린이집 운영 등 사회가 권장하는 민간공익활동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도 하고, 청소대행이나 공원프로그램·종합사회복지관·마을센터 운영 등 많은 공공업무를 민간조직에 위탁하기도 한다. 전자가 민간보조금제이고 후자는 민간위탁제이다. 모두 나랏일에 민의 참여와 전문성이 필요하기에 고안된 ‘민관협력’ 제도이다. 수많은 분야에서 개인 전문가들이, 또는 대학교, 협회, 언론사, 종교기관, 중소·대기업 등 민간이 정부·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고 있다.

국내법은 나랏일에 참여하는 이들 민간 중에 ‘시민단체’를 매우 “특별하게” 대우한다. 시민단체는 법적으로 ‘비영리’(non-profit)로 분류되는 민간단체, 사단법인, 공익법인 등이다. 이들 비영리조직은 정부 보조금을 단체 운영비나 인건비로 사용하지 못한다. 새마을운동조직, 바르게살기운동조직, 한국자유총연맹과 같이 특별법으로 예외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 한 그렇다. 현장에서 흔히 접하는 사례를 보자. ㄱ이라는 비영리단체가 지자체가 권장하는 ㄴ이라는 공익사업에 선정되어 1천만원을 보조받았다고 가정해보자. ㄱ단체는 ㄴ사업을 하며 투여한 단체활동가의 인건비와 운영경비를 그 1천만원에서 사용할 수 없다. 민간위탁제도 마찬가지다. ㄱ이 ㄷ이라는 ‘센터’를 지자체로부터 수탁받을 때 관리비용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수백만원의 보증보험을 ㄱ이 자체 부담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만약 ㄱ이 ‘비영리’가 아닌 ‘영리’(for-profit) 기업이면, 관리비용은 물론 이윤까지 산정해 위탁사업비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도 왜 ‘비영리’ 조직들은 민간보조·위탁 사업에 참여하는가?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참여하지 않는다면, 세금이 들어가는 나랏일이 영리기업이나 특별 조직들 위주로 수행될 가능성이 크다. 늘 제도는 현실을 뒤따르며 바뀌니까 현장에서 성과를 내고 그 성과는 우리 사회와 제도를 변화시키는 근거가 되리란 소명의식에서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시민단체’라 불리는 ‘비영리’ 조직들은 수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고,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낸 의제, 지식, 경험, 네트워크를 민관협력이라는 대의에서 기꺼이 내놓았다. 코로나19 재난에서는 마을에서, 복지관에서, 인권 현장에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진 곳을 돌보며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은 민관협력을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시민단체는 나랏돈을 안 쓰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하는 그는 누구와 어떤 민관협력을 구상하는가. 전체 민간위탁·보조금의 6%에 해당하는 주민자치·협치·주거·청년·노동·도시농업·환경 등 12개 분야만 유독 문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머지 94%는 괜찮았던가. 내년도 역점사업인 서울런·뷰티도시서울·로컬브랜드상권 등으로 ‘영리’ 조직들이 쓸 나랏돈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오세훈 시장의 ‘서울시 바로세우기’를 보면 그에게 민이란 나랏돈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은 ‘영리조직’과 관료 말에 순종하는 ‘비영리조직’만 존재하는 건 아닌지 개탄스럽다.

근거 없는 주장은 끊임없는 불신과 분노를 만든다. 오 시장은 민간보조·위탁으로 시민단체로 흘러들어 갔다는 그 1조원의 근거 자료를 공개하고 진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위법이 있었다면 바로잡아야겠지만, 시장이 공권력을 사용해 전체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건 더 심각한 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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