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의 Newtro] 망 장애 피해보상 방안, 현명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때
(지디넷코리아=김태진 기자)10년 전 일이다. 2011년 6월 SK텔레콤이 전체 가입자의 기본료를 월 1천원 인하한 적이 있다. MB정부 출범 당시 내세웠던 통신비 인하 요구에 맞춰 요금인가 대상사업자인 SK텔레콤이 기본료 인하를 단행한 것이다.
당시 SK텔레콤은 기본료 1천원 인하로 연간 3천120억원 규모의 요금인하 효과가 예상된다고 밝혔고, 실제 SK텔레콤의 가입자가 약 2천580만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연간 3천억원(2천580만명×1천원×12개월)의 매출이 사라졌다.
하지만 이 같은 통신비 인하 조치에 대한 이용자 반응은 싸늘했다. 아무도 만족 못하는 통신비 인하 방안이라며, 국민이 통신비 절감을 체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그럼 이보다 3배 많은 3천원의 기본료 인하가 이뤄졌다면 이용자들은 만족했을까. 추측컨대, ‘아니’였을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고가의 휴대폰 할부금+통신비’를 ‘통신요금’으로 인식하고 있는 소비자에게 월 1천원이나 3천원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반면, 통신사는 이 경우 연간 1조원의 매출이 줄어든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통신비를 주먹구구식으로 인하해 벌어진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과점 체제인 통신시장에 신규 사업자를 진입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경쟁을 부추겨 자연스럽게 통신비 인하가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했다.
이달 초 KT는 최근 발생한 전국적으로 발생한 네트워크 장애에 대한 보상방안을 내놓았다. 장애가 발생한 89분에 대해 개인은 10배 수준인 15시간, 소상공인은 이보다 많은 10일치 보상을 해주겠다는 안이다. 금액으로는 개인이 1천원, 소상공인은 7~8천원 수준이다. 약 400억원 규모다.
이에 대한 개인‧소상공인의 반응은 차갑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은 가장 바쁜 점심시간 대 발생한 사고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보상규모가 턱 없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와 KT 간 보상안을 놓고 서로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KT는 상법상 이용약관이 정한 보상 수준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한 셈이지만, 소비자들은 여기에 만족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앞선 통신비 인하 사례에서처럼 이보다 3배, 10배 많은 금액을 제시한다 해도 소비자는 만족하기 어렵고, 사업자는 수 천 억원의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KT의 망 장애를 계기로 보상규정에 대한 통신사들의 이용약관 개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소비자와 사업자 서로 납득할 만한 보상규정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는 모든 게 인터넷으로 연결돼 있는 현실에서 ‘인터넷 장애가 발생할 경우 통신사가 어디까지 보상해줘야 되는가’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또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일상과 업무가 인터넷으로 이뤄지는 비대면 환경을 고려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합의된 안도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1천원 통신비 인하처럼 주먹구구식도, 통신망 장애로 인한 피해보상을 감정적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용약관에 3시간 이상 연속장애가 발생했을 경우 보상 규정을 두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이 같은 규정보다 허술하거나 아예 없는 곳조차 있다.
실제, 4천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지난 2018년 12월 에릭슨 장비 이상으로 4시간25분 동안 통신장애가 발생됐지만 여전히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 규제당국인 총무성이 행정지도 명령도 내렸지만 이용약관에 24시간 이상 장애가 발생할 경우 보상을 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영국의 O2는 에릭슨 소프트웨어 이상으로 24시간 동안 약 3천만명이 통신 장애가 발생했고 O2는 전체 가입자에게 2일 간 이용료를 면제했다.
호주의 텔스트라는 2018년 교환기 업그레이드, 낙뢰, 소프트웨어 장애, 네트워크 장애 등의 이유로 총 4차례 통신장애가 발생했고 텔스트라는 개별 요청을 통해 개인에게는 중단 기간 동안 발생한 요금을 상환했고, 소상공인에게는 장애 기간 동안 예상 수익과 실제 수익의 차액 등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밖에 미국의 컴캐스트는 2016년 2월 네트워크 오류로 유선서비스 장애가 90분간 발생했고 개별 요청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루 요금에 해당하는 2달러의 크레딧을 제공했다. 아일랜드의 Eircom은 2013년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폭풍으로 유선서비스 장애가 발생했지만 보상안을 놓고 규제당국과 장기간 공방 끝에 2년 뒤인 2015년 4월에야 10일 이상 장애가 발생한 가입자에게만 요금을 환불했다.
이용약관에 보상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개별 요청을 통해서만 일부 가입자에게 보상을 해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선의 방안을 찾기 쉽지 않다. 또 감정적인 대결 양상으로는 합의된 안을 만들기도 어렵다. 코로나19로 비롯된 위드코로나 시대에 합리적인 이용약관 개정 마련을 위해 서로가 한 발 물러선 차선의 안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김태진 기자(tjk@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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