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 폭탄'으로 암 방어벽 깨는 '유전자 조작' 대장균 개발

한기천 2021. 11. 29.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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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형암 면역치료 향상 '기대', 동물 실험서 수명 '2배 연장'
미국 신시내티대, 저널 '어드밴스트 헬스케어 머티어리얼스' 논문
장내 미생물 [게티이미지뱅크,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박테리아 하면 대개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폐렴, 수막염, 피부 염증 등은 모두 박테리아 감염으로 생긴다.

우리 몸엔 세포 수의 최고 두 배에 달하는 박테리아가 있다.

흔히 아는 장(腸)과 피부는 물론이고 폐, 구강 심지어 암세포 안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많다.

그렇다고 유해한 세균만 있는 건 아니다. 알고 보면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ㆍ활생균)로 불리는 몸에 이로운 세균도 적지 않다.

미국 신시내티대 과학자들이 암세포를 찾아내 방어벽을 무너뜨리는 프로바이오틱스 조작 기술을 개발했다.

이런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를 기존의 항암 면역요법과 함께 쓰면 치료제가 종양에 잘 스며드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날리니칸트 코타기리(Nalinikanth Kotagiri) 약물학과 조교수 연구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어드밴스트 헬스케어 머티어리얼스(Advanced Healthcare Materials)'에 논문으로 실렸다.

논문의 교신저자를 맡은 코타기리 교수는 신시내티대 암 센터의 고형암 전문가다.

인간과 동물의 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장균(E. coli) [fusebulb/Shutterstock.com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9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고형암(solid cancer)은 혈액암의 상대적 개념으로 유방, 전립선 등 고형화된 기관에 생기는 암을 말한다.

고형암은 혈액암보다 면역치료 반응률이 훨씬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유형의 고형암은 콜라겐과 히알루론산(hyaluronic acid)으로 구성된 세포외 기질(extracellular matrix)로 싸여 있다.

면역요법을 써도 항체나 면역세포가 이 기질 방어벽에 막혀 종양 안으로 잘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치료용 세균 균주로 많이 쓰이는 '대장균 니슬(E. coli Nissle)'의 유전자를 조작했다.

발견자(독일의 알프레드 니슬 박사)의 이름을 딴 이 대장균(약칭 EcN)은 병원성 장내 세균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며, 장염을 일으키는 대장균과는 다른 것이다.

이렇게 조작된 대장균 니슬은 암세포의 방어벽(세포외 기질)을 분해하는 효소를 생성하고, 이 효소가 적재된 소낭(vesicle)을 암세포의 외막에 대량으로 분비한다.

연구팀은 박테리아가 방출하는 외막 소낭에 내부와 동일한 물질만 실린다는 점에 착안했다.

대장균 니슬이 고형암이 좋아하는 저산소, 면역결핍 환경에서 잘 증식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효소가 가득 든 소낭을 분비하는 이 대장균이 저절로 암세포를 찾아가는 건 모두 이런 성질 덕분이다.

코타기리 교수는 "고형암 종양을 찾아가 자리 잡는 니슬 균주의 특성을 이용했다"라면서 "일단 종양에 붙으면 효소가 실린 소낭을 방출해 종양 깊숙이 침윤하게 한다"라고 설명했다.

균주에 시험 중인 코타기리 교수 [미국 신시내티대 Colleen Kelley, 재판매 및 DB 금지]

실제로 이런 대장균을 함께 쓰면 항암 면역 치료제나 화학 치료제의 효과가 훨씬 더 강해졌다.

연구팀은 유방암과 결장암이 생긴 생쥐 모델에 조작된 대장균을 주입하고 나흘 내지 닷새를 기다렸다. 대장균의 효소에 의해 암 종양의 방어벽이 해체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그런 다음 면역 치료제와 다른 표적 치료제를 함께 투여하자 생쥐의 생존 기간이 치료제만 준 경우의 2배로 늘어났다.

대장균과 효소가 암세포의 세포외 기질을 효과적으로 파괴하고, 치료제가 종양 안에 안정적으로 도달하는 과정은 진단 영상에도 생생히 잡혔다.

조작된 대장균은 또 심장, 폐, 간, 뇌 등 다른 기관엔 전혀 감염하지 않아 안전성 측면에서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연구팀은 장차 이런 방식의 유전자 조작 세균을 장, 구강, 피부 등의 감염 치료에 직접 쓸 수 있을 거로 기대한다.

또 복합 단백질과 분자로 세균을 무장하면 단일 요법(monotherapy) 플랫폼으로 개발하는 것도 유망하다고 본다.

물론 대전제는 임상 시험을 통해 효과와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이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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