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르담에 울린 진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지난 10월, 필자는 잠시 벨기에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길 건너편에서는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인솔에 두 줄로 나란히 서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필자를 멀리서부터 빤히 살펴보다 씨익 웃으면서 한 마디 말을 건넸다. "스퀴드 게임?(Squid Game?)"
해외에서 느끼는 이 드라마의 열기는 대단하다. 집 앞 상점에서 '달고나'를 팔기 시작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배급사 넷플릭스에서 <오징어 게임>의 게임 중 하나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네덜란드의 두 도시에서 주말 이벤트로 개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분위기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었다. 네덜란드의 부모와 교사는 <오징어 게임>이 청소년에게 미치는 유해성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지난 9월 네덜란드 최초 공개 당시 12세 이상 관람가로 분류됐다가 뒤늦게 16세 이상 관람가로 수정됐다. 그 사이에 청소년에게 다소 폭력적인 장면이 여과 없이 전달됐을 뿐만 아니라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재생산되면서 부모와 교사의 걱정은 더해졌다.
네덜란드 교민 손삼순 씨 또한 그런 부모 중 한 명이다. "네덜란드 몇몇 학교에서는 <오징어 게임> 시청을 자제해 달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했다"라며 "드라마의 폭력적인 장면 때문에 우리 집은 가급적 보여주지 않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네덜란드 남부 드라흐턴 시에서 8살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베어스탄트(Weerstand) 씨 또한 이미 학생들이 <오징어 게임>과 그 놀이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자신의 학급에서 <오징어 게임>에 대해 적절히 다룰 수 있는 교육부 지침이 있으면 좋겠다고 현지 언론 에인반탁(EenVandaag)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런 상황 속에서 로테르담에 위치한 한 한글학교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한국의 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제 2회 케이 컬쳐 페스티벌’이 개최된 것이다.
로테르담 한글학교 원종임 교장은 행사 취지를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오징어 게임> 덕분에 한국의 놀이가 많이 알려졌어요. 그런 부분을 한글 학교의 가을 축제로 구현해서 전통 놀이와 어렸을 때 즐겼던 놀이를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고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라고 밝혔다.
행사는 지난 20일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1시에 마쳤다. 한국의 여러 놀이들 중 공기놀이, 비석 치기, 투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고무줄놀이, 땅따먹기, 달고나, 제기차기, 구슬치기 등 다양한 놀이가 준비됐다.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오징어 게임>의 잔혹함에 대한 우려와 달리 한국의 놀이를 순수하게 즐겼다.
◆달고나 체험을 하며 기뻐하는 아이들 ⓒ로테르담 한글학교 제공
이번 행사에 참여한 로테르담 한글학교 학생 류예지(중1), 박준희(중1), 이채율(중1) 양은 모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제일 재미있었다며, "학교에 돌아가서도 친구들과 놀이를 계속 같이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오징어 게임>의 폭력적인 면을 따라 하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학교에서 다른 외국 친구들과 같이 게임을 하면서 여러 한국 놀이의 재미, 그 자체에만 집중하고 있어요"라며 어른들의 걱정을 일축시켰다.
◆투호놀이에 진지하게 참여 중인 한글학교 초등학생들 ⓒ 로테르담 한글학교 제공
외국 학생들의 반응도 한국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 온 유학생인 키아라 씨는 "<오징어 게임>이 잔혹한 것은 맞지만,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의 놀이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어요. 사실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잔인한 것들이 많이 있어서 제게 <오징어 게임>은 큰 문제가 아니었어요. 대신, 드라마 속에서 했던 놀이를 제가 직접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즐겁게 놀 수 있었어요. <오징어 게임>을 보지 못했다면 그냥 그런 게임을 했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네덜란드인인 데미 씨는 공기놀이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하며, <오징어 게임>과는 상반되는 긍정적인 체험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공기놀이가 아주 재미있었어요. 공기놀이는 한 번 실패하더라도 다음 번에 다시 도전해 볼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오징어 게임>은 '실수=죽음'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지만, 데미 씨는 한국 놀이에서 '실패=재 도전의 기회'라는 새로운 공식을 발견한 것이다.
영국과 러시아인 부모를 둔 니콜 씨는 "<오징어 게임>은 조금 무서웠지만, 현실에서는 죽을 걱정은 없었기 때문에 재미있었어요"라고 재치 있는 대답을 해줬다.
로테르담 한글학교 학생들은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오징어 게임>을 통해 한국 놀이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어떠한 잔인함과 폭력적인 모습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사방치기에 참여한 각국의 한국어학당 학생들 ⓒ 김정기
지난 20일 <오징어 게임>이라는 다소 위험해 보이는 식재료가 숙련된 로테르담 한글학교라는 숙련된 요리사의 손에 들렸다. 한글학교가 내놓은 케이 컬쳐 페스티벌이라는 음식은 모든 이들이 안전하게 한국 놀이를 즐기기에 충분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 김정기, 박수민 글로벌 리포터(공동취재) kjgwow@gmail.com/korean.teacher.soomin@gmail.com
■ 필자 소개
김정기 - 캄펜신학대학교 박사과정
박수민 - 로테르담 한글학교 한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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