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불러도 안오네" 의식 잃은 아이, 심폐소생술로 살린 택시기사
“나는 전생에 의사였나봐.”
얼마 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한 A(54)씨는 그날 아침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인들과 모인 단체 채팅방이라 웃어넘기며 한 대화였지만, 사실 그때 벌어진 돌발 상황은 매우 아찔했다.
지난 27일 오전 10시쯤이었다. 서울 송파구 송파사거리 부근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A씨는 횡단보도 부근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이를 안고 있었고 여성은 울고 있었다.
처음에는 장난꾸러기 아들이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의 머리와 다리가 축 처진 채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벗겨진 아이의 신발 한 짝도 거리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 A씨는 ‘뭔가 심각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에 지체 없이 뛰쳐나갔다.
A씨는 아이를 받아들고 상태를 찬찬히 살폈다. 아이는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이미 한차례 앞으로 꼬꾸라져 입안에는 피가 가득 고여 있었다. A씨는 즉시 여성에게 119 신고를 하라고 한 뒤 아이를 평평한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아이의 가슴을 누르며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의 의식이 점차 돌아왔고 엄마와 A씨는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119는 그때까지 도착하지 않았고 유난히 추웠던 날씨 탓에 안심할 수 없었다. A씨는 119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며 택시 뒷문을 열었고 두 모자를 태웠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119에 A씨는 말문을 열었다. 먼저 아이 엄마에게 119 신고를 취소하라고 했다. 이어 직접 차를 몰아 인근 대형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A씨의 도움이 너무나 감사했던 아이 엄마가 “택시비라도 드리고 싶다”며 돈을 건넸지만, A씨는 한사코 거절하며 현장을 떠났다.
A씨의 사연은 29일 유튜브 ‘한문철TV’를 통해 공개됐다. 제보자 B씨는 A씨의 전 직장 동료로, 단체 채팅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제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A씨는 최근까지 한 유명 호텔에서 안전관리 담당자로 30여 년을 일했다. 지난 2월 호텔이 매각되며 직장을 나왔고 얼마 전부터 택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B씨는 “A씨가 어떤 아이를 심폐소생술 해 살려서 데려다주고 왔다길래 제보를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아냐 아냐. 부끄러워’라고 하시더라”며 “여전히 부끄러우니 실명은 밝힐 수 없고 그냥 윤후 아빠라고 해달라고하셨다”고 밝혔다.
영상으로 사연을 전한 교통사고 전문가 한문철 변호사는 “A씨 같은 분이 진정한 영웅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주신 제보자께도 감사하다”며 “이런 분들이 있으니 세상이 살맛 나는 거다. 큰 박수를 보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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