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석탄을 캐지 않는 폐탄광에서 예술을 즐긴다 [좌절할땐 여행]

이명희 선임기자 2021. 11. 2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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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강원 정선군 고한읍 ‘삼탄아트마인’에 광부가 세탁기에서 걸어나오는 형상의 작업복이 걸려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강원 정선은 바로 옆 태백과 함께 국내 최대의 석탄 산지였다. 화전민이 살던 한적한 시골이었던 이 일대에 석탄광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석탄 광맥이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1936년 삼척개발주식회사를 만들고, 철도를 개통해 석탄을 수탈했다.

정선군 고한읍에 1964년 민영탄광인 ‘삼척탄좌’ 정암 광업소가 문을 열었고, 이때부터 ‘검은 노다지’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동원탄좌 사북 광업소와 함께 석탄 산업을 이끌었던 삼탄은 정부의 석탄합리화정책으로 2001년 10월 문을 닫았다. 일터를 잃은 광부들도 떠났다. 한때 ‘개도 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말이 있을 만큼 흥청이던 탄광촌은 사그라들었다. 이젠 폐광의 흔적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이 곳에 시곗바늘이 멈춘 듯 외형은 그대로 살리고, 예술에 관한 모든 것으로 채워놓은 곳이 있다. 폐광 이후 버려진 시설에 들어선 문화예술공간 ‘삼탄아트마인’이다. 삼탄은 삼척탄좌를, ‘아트’(Art)는 예술을, ‘마인’(Mine)은 광산을 뜻한다. 석탄 대신 예술을 캐는 광산이란 뜻이라고 한다.

삼탄아트마인은 옛 탄광 사무실 등을 전시 공간으로 바꾸어 2013년 문을 열었다. 공연장과 레스토랑도 들어섰다. 변형을 최소화 한 삼탄아트마인은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콘텐츠가 풍부하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삼탄아트마인’ 전경. 한국관광공사 제공.

옛 삼척탄좌 종합사무동으로 쓰이던 건물은 현재 삼탄역사박물관과 마인갤러리, 아트레지던스룸 등을 갖춘 삼탄아트센터가 됐다. 주차장에서 보면 단층 같지만, 언덕에 비스듬히 기댄 4층 건물이다. 주차장에서 연결되는 입구로 들어가면 탄가루를 뒤집어쓴 선량한 눈망울의 광부를 그린 초상화가 방문객을 맞는다. 이곳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한 조선동포 화가 권학준의 작품 ‘세월’이다. 이 작품이 있는 4층은 로비와 매표소, 국내외 작가가 상주하며 창작 활동을 하는 아트레지던스룸 등으로 운영한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했던 광부들의 아내는 웨딩드레스를 물려 입었다. ‘삼탄아트마인’ 세화장에 광부 아내의 드레스가 걸려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삼척탄좌 시절, 광부들은 지하에서 채굴 작업을 마친 후 1층 ‘세화장’에서 작업용 장화를 씻고, 2층 ‘샤워실’에서 몸을 닦은 뒤, 탄광 시설의 동력을 관리하던 3층 ‘종합운전실’을 지나쳐, 지금 ‘세월’ 작품이 걸려 있는 4층의 출입문으로 퇴근했다. 이제 방문객들은 4층에서 광부들의 동선을 거꾸로 밟아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3층에는 삼탄 뮤지움 자료실과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 CAM)이 있다. 자료실에서는 광부들의 급여 명세서와 작업 일지 등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옛 사무 공간에 마련된 현대미술관에서는 시즌마다 다양한 미술품을 만날 수 있다.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마인갤러리는 전시 공간이다. 광부 3000여 명이 3교대로 이용하던 샤워실은 몇 가지 오브제와 그림을 더해 독특한 전시실이 됐다. 작업용 장화를 씻던 세화장은 다양한 격자무늬 발판 아래 조명을 달아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거듭났다.

레일바이뮤지엄으로 변신한 1층 옛 석탄 조차장(열차를 잇거나 떼어내는 곳)에서는 수직갱과 컨베이어, 레일 등 탄광 시설도 볼 수 있다. 당시 석탄을 실어 나르던 탄차, 업무상황판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기억의 정원’이다. 연탄으로 쌓아 올린 탑, 광부의 실루엣을 담은 철근 작품, 석탄을 실어 나르던 탄차 등이 옛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기억의 정원 끝에 53m 높이의 권양기(捲揚機·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는 기계) 탑이 있다. 권양기는 광부를 채굴 현장에 투입했던 장비다. 이 곳은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권양탑 옆, 갱도에 산소를 공급하던 과거의 ‘중앙 압축기실’을 리모델링한 원시미술관에서 만나는 세계 각지의 작품도 색다르다. 삼탄아트마인을 일군 고(故) 김민석 전 대표가 평생 모은 소장품이 보관돼 있다. 김 전 대표는 영국 소더비의 아프리카 미술 담당으로 일했던 컬렉터다.

삼탄아트마인은 2013년 개장과 동시에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을 받았고, 2015년에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관광지 100선’ 중 하나로 선정됐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가볼 만한 곳’으로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삼탄아트마인 관람 시간은 오전 9시 30분~오후 5시30분(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성인 1만3000원, 중·고등학생 1만1000원, 초등학생 1만원이다. 빈티지 콘셉트 레스토랑 ‘832L’에서 식사도 가능하다. 운영시간은 오전 11시∼오후 9시. 미리 예약하면 예술가들에게 빌려주는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강원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경향신문 자료사진

삼탄아트마인 인근에 정암사가 있다. 사찰이 소박하면서도 단정해 조용히 돌아보기에 좋다. 정암사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신 수마노탑이 있다. 수마노탑을 보려면 정암사 적멸궁 뒤로 난 계단을 따라 올라야 한다. 10분 정도면 된다.

이곳저곳 둘러봤다면 정선아리랑시장으로 가자. 시장엔 곤드레를 비롯한 산나물, 황기와 더덕, 감자 등 정선을 대표하는 산물이 지천이다. 매콤한 메밀전병과 고소한 수수부꾸미, 수리취떡, 콧등치기 국수 등 출출한 배를 채워줄 음식도 많다. 끝자리 2·7일에는 오일장이, 주말에는 주말장이 열린다.

이명희 선임기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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