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복은 왜 금방 터질까" 패션업계 숨은 차별 바로잡는 퓨즈서울 김수정 대표 [인터뷰]

글·사진 이진주 기자 2021. 11. 29. 13: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젠더리스 의류 브랜드 퓨즈서울 대표 김수정씨가 자신이 디자인한 옷을 입고 인터뷰하고 있다. 이진주 기자

기지개만 켜도 옆구리가 터지는 블라우스, 사고 보니 장식용인 바지 주머니, 보풀이 심해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없는 니트. 쇼핑 후 매번 비슷한 실패담을 경험한다면 옷을 고르는 안목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옷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내 몸’이 문제일까.

젠더리스 의류 브랜드 퓨즈서울 대표 김수정씨(28)는 “남성복의 완성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나쁜 품질의 여성복은 오랜 차별이 관행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며 “여성복의 기본값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제대로 만들어진 의류를 착용해본 경험이 쌓일수록 여성들이 옷을 고르고 소비하는 기준 역시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 여성복과 남성복 뒤에 숨은 차별을 끄집어낸 <여성복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시공사)를 펴낸 김 대표를 최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해 대학에서도 패션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블라우스와 원피스 등을 판매하는 여성복 쇼핑몰을 운영했다. 옷을 좋아하는 만큼 여성복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했지만 여성복과 남성복을 비교해보기 전까지 여성복의 문제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연히 남동생 바지를 입고 놀랍도록 편한 경험을 했다는 김 대표는 “일할 때 편하게 입으려고 구입한 여성용 운동복 바지를 입고 질염에 걸린 적이 있어 더 의아했다”며 “왜 이렇게 착용감이 다른지 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내외 대표 SPA 브랜드 7곳에서 같은 시즌에 나온 비슷한 가격대의 자켓과 바지 등을 여성복과 남성복 모두 구입해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사용되는 원단의 재질과 봉제법, 주머니의 개수와 깊이 등이 달랐다.

그에 따르면 여성복과 남성복의 결정적인 차이는 남성복은 ‘착용자가 활동성이 많은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만들어 여유분이 있는 반면 대다수의 여성복은 ‘보이는 라인’에만 초점을 맞춰 여유분이 없어 불편하다는 것 이었다.

‘예뻐보이면 그만’이라며 저렴한 원단을 쓰고 허술한 봉제로 마감한 옷을 판매하는 건 보세 시장 뿐이 아니었다. 패션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SPA 브랜드 역시 같은 형태를 답습하고 있다고 김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한 브랜드에서 나온 커플룩을 예로 들면서 염색만 같은 색으로 했을 뿐 남성용은 착용감이 좋은 TR 원단을, 여성용은 저렴한 폴리에스테르 원단을 사용하고 봉제도 다르게 하는 등 차별적인 요소는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주머니도 마찬가지였어요. 남성들은 활동성이 많으니까 주머니가 많이 필요할 거고, 여성들은 가방을 들고 다니니까 주머니가 깊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없어도 된다는 건데 이건 편견이죠. 제가 만든 옷에는 실용적인 주머니를 최대한 많이 넣자고 결심했어요.”

한편에서는 여성복 문제가 유행에 민감한 여성 소비자의 수요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김 대표는 “남성복 코너보다 여성복 코너가 훨씬 넓고 옷도 다양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취향을 존중해서가 아닌 소비 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니트를 사러 가도 최근 유행인 크롭티가 대부분이라 선택의 폭이 좁고 운동복 매장에 가도 레깅스 일색이라 편안한 바지를 찾기 어렵다.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쏟아내는 것들을 어쩔 수 없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퓨즈서울 대표 김수정씨는 남성복에 쓰이는 질 좋은 원단과 봉제기술, 활동성 등의 장점을 토대로 여성의 몸에 맞춘 수트를 제작해 선보였다. 퓨즈서울 제공

여성복의 새로운 선택지를 제시하고 싶다는 생각에 김 대표는 기존의 쇼핑몰을 정리하고 2018년 퓨즈서울을 론칭했다.

우선 질 좋은 원단에 몸을 옥죄지 않도록 패턴에 여유분을 줘 활동성을 높였다. 여성복에서 주로 사용하는 ‘오버로크’(박음질을 한 번만 하는 봉제방식) 대신 손이 많이 가고 공임비도 올라가지만 옷이 잘 틀어지지 않고 세탁에도 강한 ‘쌈솔’(박음질을 한 뒤 다림질을 하고 다시 한번 박음질을 하는 봉제방식)을 사용했다.

또 여성용 바지나 자켓에서 삭제된 주머니를 살려냈다. 이 과정에서 터무니없이 높은 공임비를 추가로 요구하는 여성복 공장과 거래를 끊고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하는 남성복 공장으로 거래처를 옮겼다.

이렇게 탄생한 퓨즈서울의 대표 상품인 ‘수트’는 김 대표의 로망이자 그간의 고민과 노력이 담긴 제품이다.

“남자들이 수트 한 벌에 셔츠와 넥타이만 바꿔입는게 너무 부러웠어요.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옷에 지출하는 비용이 상당하잖아요. 여자들도 가성비 좋은 수트를 입었으면 했지요.”

남성복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신체에 맞춰 디테일을 살린 수트는 면접을 앞둔 여성 취준생이나 직장인들 사이에서 편안하고 멋스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출시한 런닝 팬츠 역시 김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었다. “종아리는 슬림하게 붙지만 허벅지와 엉덩이가 달라붙지 않아 민망하지 않고 편안해요. 특히 생수병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깊은 주머니를 만들어서 개인적으로는 반려견과 산책할 때 각종 소지품을 넣을 수 있어 따로 가방을 챙길 필요가 없어요.”

김 대표는 구매자들이 다양한 종류의 의류를 경험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일상복에서 운동복, 생활한복, 속옷으로 종류를 점차 늘려가고 있다.

퓨즈서울은 별다른 홍보 없이도 매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 대표는 “옷을 구입한 분들이 자발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품이 좋다고 추천하면서 입소문이 났다. 남성 고객들도 유입돼고 있다”며 “가치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의 특징 같다”고 말했다.

내년 오픈을 목표로 여성 전용 문화체험 공간을 준비 중인 김 대표는 “여성들이 안전하게 다양한 제품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며 “단순히 의류만 파는게 아니라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함께 할 수 있는 브랜드가 브랜드가 되는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