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94살 내가 죽기만 바라는가" 양금덕 어르신의 호통

김용희 2021. 11. 29.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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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하라."

29일 오전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92) 할머니가 호통을 쳤다.

이날 양 할머니는 또 다른 피해자 고 오길애(당시 14살)할머니의 남동생 오철석(85)씨,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에 사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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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대법 배상판결 3년 강제징용 피해자 회견
"지금도 후유증에 밤잠 못 자..사죄하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앞줄 가운데)가 29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직접 손팻말을 들고 전범기업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사죄하라.”

29일 오전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92) 할머니가 호통을 쳤다. 이날 양 할머니는 또 다른 피해자 고 오길애(당시 14살)할머니의 남동생 오철석(85)씨,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전범기업과 일본 정부에 사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양 할머니는 백지에 ‘사죄하라 양금덕’이라고 쓰며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양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공장에서 2년 동안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당시 밤마다 폭격기가 날아오면 방공 구덩이에 숨어 죽음의 공포에 떨었다”며 “지금도 그때 후유증에 시달리며 밤에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양 할머니는 “대법원의 배상 판결 이후의 3년은 30년보다도 긴 세월이었다. 내가 벌써 한국 나이로 94살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사죄 한마디 듣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지적했다.

이날 자리를 마련한 시민단체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2018년 11월29일 우리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배상 명령을 내렸지만 3년이 넘도록 판결은 이행되지 않았다. 미쓰비시가 한국 사법부를 우롱하는 사이 원고 5명 중 김중곤, 이동련 어르신이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29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일제 사죄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쓰고 있다.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이들은 “일본 정부는 경제보복 조치 등 판결 이행을 방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개인의 소송이라며 외면하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의 싸움은 개인의 존엄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지만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의 양심을 시험받는 일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상임대표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피해자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일본과 어떤 교섭을 했는지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 언제까지 피해자 개인이 나서 싸움을 해야 하는지 안타깝고 실망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2018년 11월29일 ‘미쓰비시는 양 할머니 등 원고 5명에게 1인당 1억∼1억5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배상문제는 끝났다며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 원고들은 미쓰비시가 한국에서 소유한 상표권 2건과 특허권 6건에 대해 압류명령을 신청해 법원이 받아들였으나 미쓰비시 쪽이 항고하며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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