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어땠어?] 과감한 정치 풍자..근데 왜 씁쓸하지

남지은 2021. 11. 2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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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방송 어땠나요?]웨이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문체부 장관 된 올림픽 스타 이야기
남북 관계, 체육계 폭력 등 현실 담아
"주인공이 관찰 대상 의문" 의견도
웨이브 제공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에서 지난 12일 공개한 정치블랙코미디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정은(김성령)의 파란만장 정치 생존기를 다룬다. 여기에 남편인 정치평론가 김성남(백현진)의 납치사건이 더해진다.

오티티의 장점을 살려 제법 자유롭게 ‘정치풍자’를 한다. 남북문제, 정치와 종교의 고리, 국회의원 성희롱, 가짜뉴스 생산 과정 등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12회(각 30분) 동안 깊진 않지만 툭 건드린다. 윤성호 연출은 제작발표회에서 “특정 인물을 저격하는 내용이 아닌 정치 등의 아이러니를 그려냈다.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밝혔다. 국내 오티티 첫 정치풍자극에 대한 ‘평가단’의 세 가지 시선을 담았다.

웨이브 제공

정덕현 평론가의 시선 “과감한 정치풍자”

정치풍자를 과감하고 수위 높게 구현했다. 현실 정치인으로서 차정원(배해선)이나 정치와 결탁한 보수 종교단체를 이끄는 팽 목사(권태원) 같은 인물은 지금의 정치권을 떠올리게 하는 사실적인 캐릭터다.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진중권이나 유시민 같은 실제 인물의 이름을 거론할 정도로 사실감을 가져온 것은 과감한 시도다. 이정은의 남편인 진보논객 김성남을 두고 라디오 스태프들이 “유시민이 되고 싶은 잔잔바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정치권이 겉으로는 권위 있어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벌 거 아니라는 풍자도 코미디로 풀어낸다. 이야기 구조가 처음에는 뭔가 있어 보이는 정치권의 공식적인 모습을 전면에 보여준 뒤, 시간을 되돌려 그 이면에 벌어진 사건을 배치했다. 내막을 알면 알수록 권위 있어 보이던 모습이 별 거 아닌 것에 의한 일이라는 걸 드러내는 방식으로 어이없게 만든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네거티브 정국이 이어지는 마당이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정치권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시선이 간다. 이정은과 차정원, 두 여성 정치인이 대결구도로 가면서 공조하는 방식으로 서사 전체를 주도하는 점에선 현실보다 나으려나. 차정원이 자신을 성추행하는 팽 목사를 응징하고, 이정은 장관-김수진(이학주) 수행비서처럼 남녀 서열 구조를 뒤집어 놓는 캐릭터 구성도 참신하다. ‘피해자다움’이나 ‘2차 가해’ 같은 여성 서사의 젠더 이슈들이 남성 캐릭터와 대결구도를 이루기도 한다.

한국에서 오티티 전쟁이 벌어지면서 토종 오티티들의 콘텐츠 방향에 대한 고민이 컸다. 이 작품이 하나의 길을 보여줬다. 제목은 ‘청와대로 간다’인데 이정은은 아직 청와대에 가지 않았으니, 시즌2를 예고한 것일 테다. 이렇게 된 이상 진짜 청와대로 가야겠다. 정은씨 시즌2에선 청와대로 가시죠!

웨이브 제공

정은주 기자의 시선 “주인공이 왜 관찰 대상?”

대체 주인공은 누구일까. 6편까지 보고도 헷갈렸다. 포털 등장인물 소개에는 이정은을 연기하는 김성령이 맨 처음 나오고, 포스터에도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니 그가 주인공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정은의 목소리를, 정확히는 마음을 따라갈 수 없었다. 감정이입도 당연히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이정은을 관찰하는 주변인, 특히 남성들에게만 마음을 말하도록 이 드라마가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수행비서 김수진(이학주), 실장 최수종(정승길), 기자 신교환(김우겸)은 거침없이 욕망을 드러내며 떠드는데, 장관 이정은, 대변인 이채은(신원희), 동영상 제작 맹소담(김예지)은 관찰의 대상으로만 머문다. 그들의 마음은 남성의 시선에서 읽히고 해석될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정은 휴대전화로 온 남편 관련 메시지를 김수진이 감추는 장면이다. 대통령을 만나는 장관의 심기를 경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만약 남성 장관이었다면 이런 에피소드 설정이 가능했을까.

이 드라마의 장르는 블랙코미디다. 웃자고 만든 걸 죽자고 비판하는 건 좀 겸연쩍다. 다만 궁금한 건, 남은 6편에선 주인공을 알 수 있게 되나? 그런데 6회에서 멈출래!

웨이브 제공

남지은 기자의 시선 “어딜 가나 음모론!”

오티티는 역시 오리지널 콘텐츠 싸움이란 걸 또 한 번 증명했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의 인기로 웨이브라는 이름이 제대로 부각됐다. 또 한가지, 드라마든 정치든 뭘 제대로 하려면 옆에 사람을 잘 둬야 한다는 것. 이 드라마의 인기는 주인공 외에도 문체부 식구들로 나온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가 큰 몫을 했다.

극중 이정은 장관이 임기를 잘 마무리한 것도 문체부 식구들 덕이다. 남북 판문점 회담이 취소된 위기에서 최수종(정승길) 기획조정실장의 아이디어가 큰 도움이 됐다. 신원희(이채은) 대변인은 만약을 대비해 담화문을 늘 세가지 버전으로 작성해놓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고 차분하게 현상을 파악한다.

정치 바닥에 이런 사람만 있다면 풍자극이 왜 나올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는 어딜 가든 존재하는 음모론자들을 드러낸다. 남북 실무 관계자의 사적인 대화를 불법 촬영한 영상을 멋대로 해석해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 기자를 등장시킨다. 유튜버들과 함께 멋대로 상황을 왜곡하며 음모론이 시작된다. 음모론자까지는 아니지만, 성실한 문체부 식구들도 소설은 쓴다. 최수종 실장은 고민에 빠져 자신을 못보고 지나친 김수진(이학주)을 두고 “야심가”라거나 “보좌관 대행됐다고 걸음걸이부터 달라졌다”는 등 온갖 해석을 해댄다. 이정은 장관마저 이미지를 위해 남편과 ‘쇼’를 벌였으니.

현실적인 내용의 부작용일까.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한바탕 웃으며 보고나면 정치 바닥은 바뀌지 않겠구나, 싶은 씁쓸함이 몰려온다. 아무리 일 잘하는 정치인도 음모가나 소설가를 만나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고, 반대로 능력 없는 자는 유능한 인물이 될 수 있을 테니까. 현실 정치에도 이들이 활동하고 있을 테지? 정치든 사회든 소설이라도 쓰지 않으면 땡큐일까! 가볍게 보기 좋았는데…뒤늦게 씁쓸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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