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촉발시킨 '탄소세 논쟁'.."양돈농가에도 걷나" [임도원의 BH 인사이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공약한 탄소세 도입을 놓고 정치권은 물론 학계, 재계 등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진보 진영이나 여권 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합니다. 탄소세 도입이 가져올 파장 자체가 만만치 않은데다 세금을 거둬 기본소득 지급에 쓴다는 것도 논란거리이기 때문입니다.
29일 정치권에 따르면 진보 진영이나 여권에서는 탄소세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 의견이 많지만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이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낙연 캠프 복지국가비전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이상이 제주대학교 교수는 전날 SNS에 탄소세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겠다는 이 후보 공약에 대해 "국민을 속이는 포퓰리즘 정치의 극치"라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이 교수는 "탄소세에서 나온 세수는 이미 지난 20년 동안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 용도가 합리적으로 정해져 있다"며 "이 재원은 에너지 전환, 산업 구조조정, 에너지 절약형 기술 혁신 등에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이에 더해 탄소세 도입으로 높아진 상품 가격과 에너지 구입 비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상대적 저소득 계층을 돕기 위해 '필요 기반의 보편적 복지'를 더 확충하는 데 탄소세수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지원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은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려고 별 짓을 다한다"고 꼬집었습니다. 한 연구원은 "탄소세의 목표는 탈탄소 기술 혁신에 유인을 제공하고, 정부의 탈탄소 투자에 사용하기 위해서"라며 "그래서 탄소세는 스스로 빠르게 사라져야 성공한 정책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권 도전을 선언했던 박용진 민주당 의원도 지난 6월 "탄소세를 거둬서 산업구조 개편이나 노동자 안정, 재교육을 위해 써야 한다"며 "모든 재원이 기본소득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려간다. 데이터세, 로봇세, 탄소세 등을 기본소득을 뒷받침하는 식으로 쓰는 설계는 (올바른 게)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후보는 탄소세의 기본소득 지급에 대해 2019년1월 탄소배당 촉구 경제학자 성명서를 인용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28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전임 의장 4인,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전임 위원장 15인도 주장하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지난 7월 "2019년의 탄소배당에 대한 경제학자 성명에는 기본소득(UBI)이란 말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탄소배당(carbon dividends)이란 말만 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유 전 의원은 "탄소배당이란 탄소세로 에너지 가격이 올라가서 국민들에게 부담이 되니 탄소세 수입을 배당으로 돌려줘서 국민부담을 줄여주면 정치적 저항도 줄어든다는 것"이라며 "탄소세로 탄소배출량이 줄어들면 탄소세 수입도 줄고 탄소배당도 줄어드니 애당초 탄소배당은 기본소득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탄소세 도입 자체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원희룡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캠프에 몸담았던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탄소세 하면 철강 회사에 떡 하니 과세하면 되겠지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사실 메탄가스를 제일 많이 발생시키는 건 소, 돼지, 닭 같은 축산, 양돈, 양계업이다. 이 후보가 과연 축산농가에 탄소세를 과세할 수 있겠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또 "대기업은 ESG잘해서 비용 절감책이 있는데 탄소세 하면 중소기업 다 잡는 건데 하실 것이냐"고도 했습니다.
탄소세 도입은 필연적으로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9월 발표한 ‘기후변화 대응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세를 도입하면 2050년까지 GDP 성장률은 연평균 0.08~0.32%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평균 0.02~0.09%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물론 탄소세 도입을 찬성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후보의 탄소세 도입과 기본소득 재원 사용 주장은 대선 내내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에게 뒤지고 있는 지지율에 이 문제가 이미 반영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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