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신화, 화합의 서사 가졌는데.. K-콘텐츠엔 서양의 '파국'만 가득"
■ ‘한국신화를 찾아…’ 쓴 김익두 민족문화연구소장
18년 연구…神 계보·성격 분류
천상·지상·저승 ‘공간’나누고
선천·중천·후천 ‘시간대’ 정리
남성·부계의 ‘단군신화’ 더불어
여성·모계 ‘마고신화’도 한 축
善, 惡을 품으며 ‘해피엔딩’ 지향
파괴의 시대, 우리신화 주목해야
“단군신화를 원형으로 하는 한국신화는 갈등·대립·파괴의 서사를 가진 서양신화와 달리 화합·상생·대동(大同)의 서사로 이뤄져 있습니다. 파괴와 절멸의 시대인 21세기에 한국신화가 인류가 보편적으로 지향할 세계신화로 기능할 여지가 많아요. 그런데도 최근 많은 한국의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 파국으로 이어지는 서양식 서사가 남용되는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최근 한국신화를 집대성해 ‘한국신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지식산업사)을 펴낸 김익두(왼쪽 사진) 민족문화연구소장은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제 그리스·로마신화나 기독교신화만 공부하지 말고 한국신화도 제자리를 찾아줘야 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소장은 지난해 퇴직 전까지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일했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이번 책은 한국신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한국신화집조차 없는 점이 안타까워 18년간 작업한 결과물이다. 선천(先天)·중천(中天)·후천(後天)의 시간 체계를 씨줄로, 천상·지상·저승의 공간 체계를 날줄로 삼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우리 신화의 체계를 짜냈다. 책에는 우리 신화 속 신들의 계보뿐 아니라 성격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왜 한국신화에 주목해야 하나.
“신화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과거이면서 가장 오래된 미래이기도 하다. 모든 문화와 문명의 근원에는 신화적 사고방식이 있다. ‘K-팝’을 넘어 ‘K-컬처’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적 정체성의 근원인 신화를 살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한국신화의 큰 줄기는.
“한국신화는 단군신화를 기본 원형으로 한다. 이 지배적인 원형에서 수많은 신화가 파생되고 변이된 것이다. 그런데 유형을 추적해 보면 남성·부계 중심의 단군신화와 여성·모계 중심의 마고신화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부계뿐 아니라 모계신화도 중요하다는 얘기인데, 서양신화와 다른 한국신화의 특징은 또 어떤 게 있나.
“그리스·로마신화와 기독교신화를 두 축으로 하는 서양신화는 대개 대립과 갈등, 파괴의 서사를 갖고 있다. 반면 한국신화는 천상의 존재인 환웅과 지상의 존재인 웅녀가 결합해 환검(단군)을 낳고 천지인 합일을 통해 평화로운 세상을 맞았다는 단군신화가 보여주듯 화합과 상생, 대동의 서사로 이뤄져 있다. 한국신화에도 악마적 요소가 나오지만, 이들에게도 저승신이나 화장실신 등의 형태로 나름의 자리를 준다. 악은 완전히 사라지고 선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선이 악을 끌어안고 가는 해피엔딩을 지향한다. 파괴와 절멸의 시대라고도 하는 21세기에 한국신화에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소장은 그러나 서양의 논리가 지배논리가 된 근현대를 거치면서 한국신화의 서사 구조가 잊힌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최근 한국 소설이나 드라마 등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얘기한 갈등을 중심으로 한 서사 구조를 따르는 사례가 많다. TV 드라마까지 전부 싸우고 갈등하고 어느 한쪽이 극단적인 파국을 맞는 서사가 남용되고 있다.”
―한국신화의 서사가 잊히는 이유는.
“한국신화 연구가 부족했다. 그나마도 건국신화와 무속신화에 집중됐다. 우리 신화의 원형을 찾고 체계를 잡는 작업이 제대로 안 됐다.”
―여전히 한국신화 하면 미신으로 취급되기 일쑤다.
“그런 논리라면 그리스·로마신화도 서양 미신에 불과하다. 서양 미신은 자녀에게 읽히면서 왜 한국 미신은 무시하나.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한국신화의 마땅한 자리를 찾아줘야 한다.”
김 소장은 이번 책에서 ‘환단고기’ ‘부도지’ ‘규원사화’ 등 학계에서 위서 논란의 대상이 돼온 자료들도 비중 있게 다뤘다. 그는 “신화는 신화로 봐야지, 역사와 동일시해선 안 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트로이 사례가 보여주듯 신화와 역사는 동전의 양면이지만, 신화와 역사를 직결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환단고기’ ‘부도지’ ‘규원사화’ 등에 나오는 얘기는 우리 민족의 신화적인 상상력을 보여주는 자료로 볼 필요가 있지만, 이걸 역사의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따른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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