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시오도스의 '신통기'.. 제우스처럼 옛 질서 맞서야 진정한 청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⑨ 20대 대선과 청년세대
아버지로 상징된 기성세대에
두려움 떨치고 순응대신 도전
구세대 적응 급급한건 무의미
기존체제 넘어야 새시대 가능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이 문장을 만났을 때, 청춘을 예찬한 이 멋진 문장 자체에는 소름 돋고 정말로 가슴이 떨렸지만, 정작 ‘청춘’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선 감흥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청춘이 뭘 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어른들이고, 그들이 단단하게 서 있는 기존 질서 속에서 청춘은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압도적이지 않은가? 청춘의 항의는 벽에 부딪혀 무력하게 쓰러지고, 억압에 짓눌려 묵살당하기 일쑤다.
젊다는 건, 아직 체제의 주역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이 낯설고 불편하며 그에 불만을 품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나이가 들었다는 건, 기존 질서의 실세이거나 그에 길들고 무력하게 순응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박차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청춘일 수밖에 없다. 청춘이면서 기존 질서에 순응하고 새로운 도전을 포기한다면, 설령 잘 적응해 승승장구한다 해도 진정한 의미의 청춘이라 할 수는 없다. 기존의 벽을 넘거나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려고 할 때, 비로소 청춘인 것이다.
서구인들의 저력을 구성한 그리스 신화는 청춘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태초에 세계를 지배한 것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였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 우라노스는 그녀가 세운 질서를 딛고 일어나 군림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그의 시대는 다시 그의 아들 크로노스의 도전에 순식간에 무너졌다. 매복해 있던 크로노스는 아버지가 어둠을 끌어내리며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번득이는 불멸의 낫을 휘둘러 아버지를 거세했다. 피투성이가 된 우라노스는 역사의 뒤안길로 달아나야만 했다. 그리스 신화에 그려진 신들의 역사는 기성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갈등과 싸움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은 상상 속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인간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의 역사나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삶의 진실을 감추지 않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사회적 담론과 교육 콘텐츠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데서 놀라운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패권자가 된 크로노스는 레아와 결혼해 자식 다섯을 낳았다. 그러나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삼켰다. 이들이 자라서 자신을 밀어내고 권력을 빼앗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세대를 자신의 틀 속에 가둬 두려는 기성세대의 보수적 특징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태어난 여섯째만은 레아가 몰래 빼돌렸다. 크로노스는 레아가 아이 대신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주자, 그것을 갓 태어난 아이라 생각하고 삼킨 것이다. 빼돌려진 아이는 크레타 섬 동굴 안에서 친절한 요정들의 보호를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청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아버지가 삼킨 형제자매를 꺼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동굴 속에 숨어 지내며 편안하게 살 것인가? 세상을 지배하는 어마어마한 아버지에게 도전했다가 실패한다면 그 처절한 응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현실에 안주하고 싶은 유혹과 도전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고민하던 청년은 마침내 아버지에게 도전할 용기를 냈다. 기존 질서에 안주한다면, 새로운 세계, 나의 시대를 열 수 없다는 결단이었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그것을 끝내 이겨내는 힘에서 나오는 것임을 청년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청년은 아버지를 찾아가, 아버지 배 속에 갇힌 형제자매를 모두 구해낸 후, 마침내 아버지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권력자가 됐다. 그가 바로 그리스 신화의 최고 신, 제우스였다.
헤시오도스가 ‘신통기’에서 그려낸 그리스 신화는 그리스의 젊은이들에게, 이후 지금까지 서양의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말한다. 기존 질서에 안주하고 도전하지 않는 자는 자신의 시대를 만들 수 없다고. 역사는 새로운 세대의 도전으로 만들어진다고.
청춘, 그것은 단순히 나이로 정의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도전, 그것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진정한 청춘이다. 청춘, “이것이다. 인류 역사를 꾸려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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