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초의 '소년중국설'..新청년은 연령 넘어 '사회적 젊음' 지녀야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⑨ 20대 대선과 청년세대
노쇠해진 중국 개혁하려면
새로운 미래 열 新청년 필요
정치권의 청년층 집중 구애
표만 노리는 정략 아니어야
양계초(梁啓超)는 근대 중국의 선각자로, 20세기 전환기 조선에도 큰 영향을 미쳤던 인물이다. 그는 19세기 마지막 해라고 여겨지던 1899년 말, 선망의 대상이었던 미국을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훗날 ‘100일 유신’이라고도 불린 서구 근대식 정치개혁에 실패, 성급히 일본으로 망명한 지 1년 남짓한 때였다.
며칠 후 그는 선상에서 20세기의 첫해를 맞이했다. 그는 태평양, 그 일망무제의 대양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의 입에서는 장쾌한 시구가 흘러나왔다. “신구 두 세기의 경계선, 동서 두 반구의 한가운데!” 1900년 1월, 하와이로 향한 선상에서 읊은 ‘20세기 태평양가’의 한 대목이다. 육신은 뱃전에 있었지만, 정신은 시간을 100년 단위로 아우르며 온 지구를 조망하는 위치에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웅장하게 꿰뚫고 있었다.
“청년 중국에 대하여”라는 뜻의 ‘소년중국설(少年中國說)’은 이러한 그의 정신이 빚어낸 강렬한 호소였다. 이 글에서 양계초는 노년과 청년을 다양한 각도에서 대조했다. 그는 “노인은 늘 과거를 생각하고 청년은 늘 미래를 생각한다. 과거만을 생각하기에 연연해 하는 마음이 생기고 미래만을 생각하기에 희망이 생긴다”는 식으로 구도를 짠 후 다양한 쌍을 동원해 양자의 속성을 통찰했다. 판에 박힌 대비이지만 노인 쪽에는 보수적, 수구, 관례, 나약함, 저녁노을, 고인 물 등을 배치하고, 청년 쪽에는 진취적, 일신, 파격, 씩씩함, 뜨는 해, 흐르는 물 등을 안배했다. 그런가 하면 ‘비쩍 마른 소’ 대 ‘어린 호랑이’, ‘아편 연기’ 대 ‘브랜디 술’같이 노년을 다소 짠하게 비유하기도 했고, ‘다른 별의 운석’ 대 ‘대양의 산호섬’, ‘이집트 피라미드’ 대 ‘시베리아 철도’ 같은 색다른 대비도 제시했다.
그러나 양계초가 가장 하고 싶었던 대비는 ‘세계를 파멸시킴’ 대 ‘세계를 창조함’이었던 듯싶다. 그가 세기 전환기, 문명 전환기의 한가운데서 청년을 소환한 까닭은 노쇠한 중국을 갈아엎은 자리에 ‘청년 중국’ 건설을 염원했기 때문이다. 하여 “일을 귀찮아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투덜대는 노년 대신에 “일하기를 좋아하고 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며 즐기는 청년을 불러냈던 것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양계초의 호소는 청년 중국의 탄생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렇게 15년 남짓 흘렀을 즈음, 중국 사회에 ‘신청년(新靑年) 신드롬’이 불었다. 1916년 일군의 젊은 선각자들이 ‘청년잡지’라는 저널을 창간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이내 제호를 ‘신청년’으로 바꿨고, 중국의 근대적 개혁을 열망하는 시대정신과 호응하며 중국 현대사의 일대 혁신을 일궈냈다. ‘신청년’은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새로운 중국 건설을 위한 사유와 제언, 상상의 플랫폼으로 기능했고 사회적 실천의 장이 됐다. 덕분에 오늘날 ‘신청년’은 잡지이면서도 어엿한 고전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그런데 당시 선각자들은 이름을 왜 청년잡지에서 신청년으로 바꿨을까? 무슨 이유로 ‘청년’을 ‘신청년’으로 대체했던 것일까?
양계초가 불러내고자 했던 청년은 청년 중국을 빚어낼 ‘청년’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국 현실에는 노년 중국의 청년, 곧 ‘노청년(老靑年)’이 다수였다. 생물학적 연령으로는 청년인데 늙고 낡은 중국에 물들다 보니 양계초가 꼽았던 청년의 덕목을 미처 지니지 못한 청년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는커녕 그나마 남아 있던 선함마저 함께 파괴하는 청년이었다. 청년 중국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노청년’과 구분되는 새로운 청년이 필요했던 까닭이다. 청년 중국을 주조할 새로운 청년으로서의 ‘신청년’은 그렇게 변혁의 현장으로 소환됐고 새로운 중국을 창출하는 심장으로 거듭났다.
결국 청년을 청년답게 하는 것은 문제적 현실을 혁파하고 한층 나은 미래를 빚어내는 힘의 구비였다. 하여 청년은 생물학적 젊음을 지닌 ‘청춘으로서의 청년’을 넘어 새로운 삶을 빚어가는 사회적 젊음을 지닌 ‘대안으로서의 청년’으로 발돋움해갈 수 있다. 20대 대선 국면에서 청년세대에 집중되는 정치권의 구애는 단지 표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마땅히 청년의 이러한 힘에 대한 존중이어야 하리라.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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