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친왕 일가 어린이 옷' 추정 의복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정연욱 2021. 11. 29. 09:49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 일가의 어린이 옷들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됩니다.

문화재청은 오늘(29일) 조선 시대 왕실의 어린이 복식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전(傳) 영친왕 일가 어린이 옷' 9건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 일가의 어린이 옷들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됩니다.

문화재청은 오늘(29일) 조선 시대 왕실의 어린이 복식 문화를 파악할 수 있는 ‘전(傳) 영친왕 일가 어린이 옷’ 9건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전(傳)은 기록은 확실하지 않지만 사용자 등을 추정할 수 있는 유물에 붙이는 용어입니다.

‘전(傳) 영친왕 일가 어린이 옷’은 사규삼과 창의, 두루마기, 저고리, 색동마고자, 풍차바지, 조끼, 버선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사 결과 앞서 일본에서 환수돼 2009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영친왕의 아들 이구의 복식 유물과 소재, 단추, 문양 등이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문화재청은 지정 이유에 대해 어린아이가 착용하기 쉽게 분홍색 사규삼 아래 녹색 창의를 받쳐 꿰매놓은 ‘사규삼 및 창의’는 조선 시대 왕실과 반가에서 돌옷이나 관례 시 예복으로 입힌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유물이 드물어 희소성이 높은 점을 들었습니다.

돌띠 방식의 긴 고름을 달아 만든 ‘두루마기’와 ‘저고리’, 그리고 용변이 용이하도록 뒤가 트인 ‘풍차바지’ 등은 어린아이에 대한 배려와 조선 시대 어린이 복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손바느질과 재봉틀 사용이 모두 확인되는 ‘조끼’는 서구문화의 유입에 따른 봉제 방법의 변화를 알 수 있는 유물인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화재청은 “전체적으로 의복의 소재와 문양 등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유행한 것으로 확인되고 그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 등에서 학술적으로 가치가 탁월하다고 인정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지정되는 유물은 숙명여자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같은 학교 김명자 교수가 1972년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로부터 아들의 돌 선물로 받은 것을 1998년 학교에 기증한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옷의 주인을 알 수 있는 문헌 등 자료가 부족하고 옷의 크기로 미루어 볼 때 실제 영친왕이 착용했다고 특정할 수는 없다”면서도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왕가 어린이가 입었던 옷에서 볼 수 있는 주요한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기에 문화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숙명여자대학교 제공]

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