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산] 소청봉에 이름 모를 용사의 유골..반달곰이 과자 먹던 시절

사진·글 <산의 기억>에서 발췌 재편집. 김근원 촬영, 아들 김상훈 구술 정리. 2021. 11. 29. 09: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사진가 김근원 선생의 유고 산악사진집 <산의 기억(열화당)> 의 일부 사진을 발췌해 소개한다.

김근원 선생(1922~2000)이 남긴 30만 점의 사진 중에서 아들 김상훈씨가 386점을 엄선해 <산의 기억> 에 담았다.

1950년대부터 담아낸 사진은 산악계의 소중한 유산이자 걸작들이다.

1959년 가을 설악산 용대리를 찾았을 때 반달곰 사진을 찍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때 그 산 <3> 1950년대 소청봉과 용대리 풍경
용대리 주민들이 키우던 야생 반달곰 새끼.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사진가 김근원 선생의 유고 산악사진집 <산의 기억(열화당)>의 일부 사진을 발췌해 소개한다. 김근원 선생(1922~2000)이 남긴 30만 점의 사진 중에서 아들 김상훈씨가 386점을 엄선해 <산의 기억>에 담았다. 1950년대부터 담아낸 사진은 산악계의 소중한 유산이자 걸작들이다.
설악산 소청봉에서 마주친 6·25참전 용사의 유골.
1958년 10월 나(김근원)는 윤두선·양천종과 김정태 선생을 모시고 설악산을 찾았다. 백담사에서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었다. 올려다보다가 내려다보다가 굽이치고 돌아가는 산마다 골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장면 앞에서 뭐라 말이 안 나왔다. 설악산이 최고의 명산임을 실감하면서 만경대로 올랐다.
이상한 것은 오를수록 가슴 저미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이었다. 유서 깊은 절들이 하나같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원명암이 그랬고 오세암도 그랬다. 봉정암은 더 형편없었다. 나중에 신흥사로 내려가 보니 거기는 무너져 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6·25전쟁의 참상이 온 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소청봉 주변은 온통 해골이 널브러져 있었다. 사진 속 유골은 설악산 전투에 참전한 어느 병사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주변의 유골을 수습해 땅에 묻어 주었다. 덮어 줄 한 줌의 흙도 없어 주변 돌을 모아 돌무덤을 만들었다.
1959년 가을 설악산 용대리를 찾았을 때 반달곰 사진을 찍었다. 마을에서 어슬렁거리는 새끼 반달곰을 주민들이 데려다 기르면서, 어느덧 길목의 명물이 되었다. 귀엽고 깜찍한 새끼 반달곰은 눈을 멀뚱거리며 지나가는 사람을 쳐다보다가, 과자라도 주면 얼른 몸을 일으켜 받아먹었다. 등반객들은 이런 즐거움에 더욱 용대리를 찾게 되었는지 모른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새끼 반달곰 과자 받아먹던 시절도 우리네 산에서 있었다.

본 기사는 월간산 1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