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24시]진주만 기습 80주년과 韓 안보 지형
80년 전인 지난 1941년 12월 7일, 11월 26일 진주만을 향해 출항했던 일본의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하와이 북쪽 440㎞ 지점에서 출격 명령을 내렸다. 360대의 전투기가 발진해 일요일 아침잠에 빠져있던 진주만을 공격했다. 기습 피해는 엄청났다. 함선 18척이 침몰 및 손상됐고 180여 대의 비행기가 파괴됐다. 군인 사상자는 사망자 2,300명을 포함해 3,400명에 달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말했듯이 ‘불명예스러운 날로 기억될 그날’이었다. 2001년 개봉된 영화 ‘진주만(Pearl Harbor)’은 그날의 무방비 상태를 잘 그려냈다. 2명의 젊은 중위는 시끄러운 비행기 소리에 “오늘은 일요일인데 뭔 작전이라도 하는 거냐”며 투덜거리다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 하늘 위로 일본 해군 함재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다.
1941년 7월 미국은 일본과의 모든 상업·금융 관계를 단절했다. 일본은 진주만 공격 당일까지도 미국과 협상하면서 도조 히데키 총리 정부는 전쟁을 결의했다. 미국의 대일 석유 봉쇄가 결정적이었다. 조지프 그루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이 전쟁을 준비한다는 보고서를 본국에 송신했으나 유럽 내 전쟁 문제에 몰두하던 워싱턴은 이를 묵살했다. 이후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가 이어졌다. 미 정보 당국은 일본군의 공격임박설을 인지했으나 일본으로부터 5,000마일 떨어진 진주만이 아닌 필리핀이 목표라고 판단했다. 일본군 항공기의 라디오에는 일요일 하와이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음악이 들려오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어서 공격 목표물을 훤히 볼 수 있었다고 당시 공격에 참가했던 일본 해군 중좌 후치다 미쓰오는 회고했다.
정보 실패에는 적의 기습 공격을 적시에 파악하지 못해 발생하는 ‘경고 실패(warning failure)’와 적의 능력을 과대·과소평가해 동향을 잘못 파악하는 ‘정보 오판(intelligence misjudgement)’ 등이 있다. 전자는 1951년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 2001년 알카에다의 뉴욕 9·11 등이 있다. 후자는 1950년대 말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과대평가, 1990년대 초 소련의 해체에 대한 예측 실패 등이 있다.
2021년 한반도 상황은 어떤가. 북측에서는 극초음속 미사일에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 함경남도 신포에서 시험 발사 준비에 들어갔다. 해운대 및 인천 앞바다에 소형화·경량화된 핵을 장착한 잠수함이 출몰할 날이 머지않았다. 한반도 남측 대만해협 인근 바다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있다. 각국의 항모 전단들이 남지나해 인근에 집결하고 있다. 지난달 미 항모가 대만해협을 지나가자 중국 함정은 일본 본토와 홋카이도 사이에 쓰가루해협을 거쳐 알래스카까지 항해에 나섰다. 북측의 핵과 재래식무기의 기존 위협에 대해 신냉전 시대에 남측 바다의 위협도 급속히 부상하고 있다. 대륙과 해양에서 출몰하는 모든 적을 격퇴해야 하는 일은 반도 국가의 숙명이다. 전선은 넓고 국방비 증강은 한계가 있다. 예산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21세기 스마트형 군을 육성하는 일은 육·해·공 삼군(三軍)의 합동성이 미흡한 상황에서 지난(至難)한 과제다.
인공지능(AI) 만능 시대지만 요소수 부족으로 경유 구매를 위한 줄서기가 벌어진다. 대서양과 인도양을 거쳐 남지나해에서 한반도로 이어지는 서부텍사스산과 두바이산 석유 수송로는 무탈한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정보 오판을 거쳐 경고 실패로 이어졌던 지난날의 역사를 철저하게 곱씹어보지 않으면 21세기 진주만 기습 공격은 한반도에서 언제 어디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번 주말 밤에는 영화 ‘진주만’을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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