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노트] 오미크론 공포, 테이퍼링에 제동 걸까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온 나라를 공포에 빠뜨린 지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오미크론’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리스 알파벳 15번째 글자를 따 명명된 변종 바이러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발발해 유럽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으며, 미국을 넘어 홍콩까지 상륙하며 아시아를 위협하고 있다.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의 출현에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한 곳은 금융가였다. 26일 코스피지수와 홍콩항셍지수, 상하이종합지수 등 아시아 주요국 증시가 1~2%대 하락률을 기록한 데 이어 유로스톡스50 지수는 4.74% 폭락하며 투자자들을 패닉에 빠뜨렸다. 프랑스와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주가지수 모두 4% 넘게 떨어졌다. 미국 3대 주가지수 역시 일제히 2% 넘게 급락했다.
오미크론에 즉각 반응한 것은 주식시장 뿐이 아니었다. 경제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일제히 급락했다. 26일(이하 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유(WTI) 1월물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13.06% 내린 배럴 당 68.15달러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9월 초 수준으로 돌아간 것이다. 두바이유 12월물 가격과 브렌트유 2월물 가격 역시 11% 넘게 급락했다.
이처럼 전세계 금융 시장이 요동치자, 미 월가에서는 이를 금융 정책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변수로 해석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26일 CNBC가 인용한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툴(FedWatch tool)에 따르면, 단기 금융 시장 참여자들은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내년 6월 회의에서 기준 금리를 인상할 확률을 53.7%로 전망했다. 불과 이틀 전까지만 해도 82.1%가 6월 금리 인상을 점쳤지만, 오미크론의 확산 영향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진정되고 인플레이션이 안정된다면 중앙은행의 긴축 시계도 늦춰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 중앙은행이 오미크론 때문에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과 금리 인상을 늦출 것이라는 예측은 과연 타당할까.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28일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은행 총재는 폭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의 변종 바이러스가 잇달아 출현하면서 경제 회복 속도가 둔화하긴 했지만, 둔화 정도는 점차 약해졌다”며 오미크론이 경제에 미칠 타격이 델타 변이와 비교해 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스틱 총재는 또 인플레이션이 계속 상승할 경우 연준이 내년 중 기준 금리를 최소 2회 인상하는 것이 “확실히 가능”하다며 “인플레이션을 통제 불능 상태가 되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보스틱은 현재 연준 내에서 영향력이 상당히 큰 인사다.
인플레이션 급등은 쉽게 진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박 연구원은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면, 공급망의 차질이 극심해져 인플레이션을 오히려 더 자극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공개된 경제 지표도 인플레이션의 심화 가능성에 힘을 싣는다. 지난 24일 미 상무부에 따르면, 10월 개인 소비 지출(PCE) 가격 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5.0% 오르며 30년 만의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10월 근원 PCE 가격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1% 올랐다. 지난 1991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척도로 간주되는 고용 지수 역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미 노동부는 오는 2일 11월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와 시간 당 평균 임금을 공개한다. 블룸버그 전망치에 따르면 취업자 수는 53만명 증가하며 전월(53만1000명 증가)과 비슷한 흐름을 이어갈 예정이다. 시간 당 평균 임금은 전년 동기 대비 5% 오를 전망인데, 이는 10월(4.9% 상승)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팬데믹 쇼크 이후 미국의 경제 활동 참여율이 크게 하락해, 노동력 공급 부족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같은 현상이 만성화해 임금 상승세가 지속되면 인플레이션 상승을 압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연구원은 임금 뿐 아니라 집값 상승도 함께 가속화하며 기대인플레이션의 오름세가 과거에 비해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현지의 증시 전문가들 역시 연준이 긴축 속도를 늦출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27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아문디자산운용의 레안드로 갈리 선임 매니저는 “인플레이션이 놀라운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만큼, 연준이 테이퍼링을 연기할 여지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위즈덤트리인베스트먼트의 케빈 플래너건 연구원 역시 “연준은 데이터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향후 몇 번의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인플레이션 완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내년 중 기준 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제 투자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다음 달 16일로 예정된 FOMC를 기다리며 연준의 행보에 주목하는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오는 30일 의회 증언을 앞두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의견과 테이퍼링 및 금리 인상 등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될 예정이다. 다음 달 1일에는 연준의 경기 동향 보고서인 베이지북이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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