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단짝' 美日, 석유 방출도 올림픽 보이콧도 한몸처럼[김보겸의 일본in]

김보겸 2021. 11. 29.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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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보이콧할건가" 질문에 美입만 바라보는 日
전략적 비축유 방출하자는 美제안에 50년 지킨 원칙 깼다
"국제유가 하락 효과 없다" 비판·중국 반발에도 美추종하나
일본이 최근 베이징올림픽 보이콧과 전략적 비축유 방출 등에 있어 미국을 적극 추종하고 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맹방보다 더 맹방 같은 관계가 있다.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깝지만 미국과 일본 얘기다. 정치와 외교, 경제 문제 등에 있어 미국의 뜻이 곧 일본의 뜻인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더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적 보이콧 여부가 대표적이다. 일본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 정부의 대응이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라는 대답이 나올 정도다. 적절한 시기에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게 일본 정부 입장이지만, 이들이 말하는 적절한 시기란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입에서 “베이징올림픽을 외교적으로 보이콧하겠다”는 결단이 나오는 순간을 의미할 것이다.

고공행진하는 유가를 잡겠다며 미국이 국제사회에 잉여 석유를 방출하자고 독려하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도 일본이다. 1970년대부터 지켜오던 원칙까지 깨부수며 국가 비축분을 풀겠다고 나서면서다. 정작 영미법으로 묶인 혈맹이자 결정적인 순간엔 항상 미국 편에 서 온 영국조차 국가 비축분에는 손대지 않고 민간 비축분만 자율적으로 풀게 하겠다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일본은 맹방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미국을 추종하고 있다.

일본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시부시 국가석유 비축기지(사진=교도통신)
1970년대 세운 석유비축 원칙, 바이든 지지율 올리기에 무너졌다

일본에서는 미국을 향한 지독한 짝사랑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은 국가 비축유 방출이 대미 협조의 의미가 강하다고 평가했다. 미국과의 협조를 위해서라면 일본 정부가 원칙까지 무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비판이다.

일본 정부가 깬 원칙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만으로는 잉여 석유를 함부로 방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1차 오일쇼크로 제정된 석유비축법이 그 근거다. 이 법에 따르면 분쟁이나 자연재해로 공급에 문제가 생길 경우에만 석유 비축분을 방출해야 한다. 1991년 걸프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도 민간 비축분만 일부 풀었다.

그런데 지금은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국가 비축분도 방출한다는 게 일본 정부 계획이다. 휘발유 가격이 1리터당 185.1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2008년에도 민간 비축분조차 방출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지난 10일 일본 휘발유 가격은 1리터당 평균 170엔 정도로 2008년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국가 비축분을 풀겠다는 것이다. 유가가 너무 비싸다는 것이 잉여 석유 방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세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7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손녀들과 함께 억만장자 기업가가 소유한 357억원짜리 저택에서 휴가를 보내는 바이든 대통령. 30년만에 최고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상황에서 부적절하다는 비판에 휩싸였다(사진=AFP)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일본이 50여 년 지켜 온 원칙까지 무력화하는 모습이다. 1가족 2차량이 기본인 자동차의 나라, 미국에서 휘발유는 생필품이다. 연말 휴가철을 앞두고 고공행진하는 유가에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24일 공영방송 NPR 여론조사에 따르면 42%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잉여 석유를 풀어 유가를 안정화하고 지지율 회복을 노리고 있다.

또 이번 비축유 방출 계획이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국제적인 리더십을 홍보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면 전 세계가 따라온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미국 내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잉여 석유 방출 프로젝트가 남는 장사이지만, 일본에도 과연 그럴지는 미지수다. 원칙을 파기하면서까지 감수할 만큼의 실효성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서다. 미국과 일본 등 6개국이 내놓는 잉여 석유 규모는 7000만배럴로 추산되는데, 영국 최대 석유회사 BP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가 하루에 소비한 석유량이 8847만배럴이다. 원칙까지 깨면서 일본이 국가 비축분을 시장에 풀어도 이틀을 채 못 버틸 미미한 수준이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미국의 혈맹인 영국도 민간 비축분만 방출하는 정도로 동참하겠다는데 일본은 한 술 더 떠서 국가 비축분까지 풀겠다는 계획이다(사진=AFP)
심지어 미국의 맹방인 영국과 방출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일본은 국가 비축유 잉여분 중에서 국내 수요의 1~2일 분량인 420만배럴을 방출하는 반면, 영국은 민간기업에 자발적으로 방출을 맡겨 150만배럴까지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을 향한 과잉충성이 오히려 산유국들을 일본의 적으로 돌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이렇게 방출된 석유를 시장에 내다 팔 때 낙찰액을 싸게 불러야 유가가 떨어지지만 산유국 눈치를 보느라 과연 싼값으로 낙찰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일본 일간공업신문에 “산유국과의 관계에서 눈에 거슬리는 구매 방법을 택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본심”이라고 고백했다. 괜히 낙찰가를 싸게 불렀다가 산유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앞으로의 원유 조달 비용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동기화한 기시다 정권을 향한 언론 평가도 박하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조차 석유 국가 비축분 방출을 향해 “가격 인하 효과는 턱도 없다”며 “일본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 긴밀하게 외교관계를 구축해온 만큼,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산유국에 증산 요구를 해야 한다”며 미국에 동조한 정권을 질책했다. 또 마이니치신문은 “산유국과 협력해 석유에서 친환경 에너지로의 이행기를 극복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미국보다는 산유국들과 대화를 통해 국제유가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미국이 전면 보이콧을 선언했고 일본도 여기 동참했다. (사진=IOC)
베이징올림픽 보이콧 여부도 미국 입만 바라보는 일본

베이징올림픽에 선수단은 보내되 정상과 정부 사절단은 불참하는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서도 일본은 미국 정부가 결정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40여 년 전에도 미국과 한 몸처럼 움직인 일본이다. 1979년 옛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선수단조차 보내지 않는 전면 보이콧을 실시, 우방국도 동참하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스포츠계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국의 전면 보이콧에 동참하려던 영국 정부는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한다”는 영국올림픽위원회(BOA)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선수단을 개인 자격으로 보냈다. 호주와 프랑스, 이탈리아와 덴마크 선수들도 올림픽에 참가했다.

일본은 대체로 미국에 맞서지 않았고,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 유도 영웅 야마시타 야스히로 선수와 레슬링의 타카다 유지 선수가 울면서 올림픽에 나가게 해 달라며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많은 일본인들이 당시 보이콧 동참을 일본 스포츠계의 ‘흑역사’로 기억한다.

일본 유도 영웅 야마시타 야스히로(왼쪽)와 레슬링의 타카다 유지(오른쪽) 선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출전하게 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먹히지 않았다(사진=교도통신)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들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이라면 동참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민주사회로 변모하기를 거부하고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를 강화하려는 중국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커진 데다 신장 위구르 지역에서의 강제노동 및 홍콩 민주화운동 탄압 등 중국 정부의 인권유린을 향한 비판의식이 높아진 탓이다.

최근에는 베이징올림픽 유치에 핵심 역할을 한 장가오리 전 부총리가 중국 테니스 스타 펑솨이를 수년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미국과 영국, 캐나다와 호주, 뉴질랜드 등 5개국 정보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로 이런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중국은 도쿄올림픽을 지지했다는 점을 들면서 일본에도 베이징올림픽 지지를 촉구하고 있다(사진=AFP)
다만 이번에도 일본이 미국 편에 서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도쿄올림픽을 지지했던 중국의 반발이다. 중국 외교부 측은 지난 25일 브리핑에서 “중국은 전력으로 도쿄올림픽 개최를 지지했다. 일본은 기본적인 신의를 지켜야 한다”며 일본에 베이징올림픽을 지지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베이징올림픽과 (중일) 양국의 정치 문제를 연계시키는 데 중국은 결사반대다. 중일 양국에는 서로 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는 중요한 공통 인식도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 입에 전광석화처럼 반응해 왔던 일본의 외교적 후각이 이번에도 작동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김보겸 (kimkij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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