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백신 맞고 열이 끓는데 약 사줄 애인이 없을때
(서울=뉴스1) 김근욱 기자 = 지방에서 상경해 줄곧 자취 생활을 한지 어느덧 7년째다. 고향에 가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올 만큼 혼자가 편한 존재가 됐지만, 가끔은 혼자인 게 한없이 서러울 때가 있다. 그건 몸이 아플 때다.
며칠 전, 베개가 흥건히 젖을 만큼 크게 앓았다.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을 하고 난 다음날이었다. 주삿 바늘이 들어간 팔뚝 그리고 옆구리와 허벅지가 묵직한 게 꼭 등산을 다녀온 다음날 같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부터 몸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온몸이 우동에 올라간 가쓰오부시마냥 바들바들 떨렸다. 이마는 갓 쪄낸 고구마같이 화끈거렸다. 몸은 한겨울인데, 머리는 한여름인 불균형 속에 입에선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아프면 타이레놀을 드세요" 코로나19 접종 전 의사가 해준 말이 기억났다. 문제는 아픈 몸을 이끌고 약국까지 가느니, 차라리 침대에 누워있는 게 낫겠다는 썩은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럴때 약 하나 사줄 사람은 어디에...눈물이 찔끔 차오르는 순간 약을 배달해준다는 '원격 진료'가 떠올랐다.
원격 진료. 단어가 주는 테크닉한 느낌과 달리, 이용법은 아날로그틱했다. 원격 진료 앱에 접속해 눈에 보이는 병원을 선택한 뒤 증상을 문자로 적으면 됐다.
나는 감기 증상을 선택하고, 제일 상단에 뜬 병원을 선택한 뒤 "어제 화이자 2차 백신을 맞았는데, 온몸에 근육통이 있고 열이 나네요. 타이레놀을 먹어야 하는데, 나가기가 힘들어서요. 원격진료 가능할까요?"라 적었다. 그리고 정확히 1분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의사였다.
"네, 여기 병원이에요. 증상이 어떠세요?" "가슴이 두근두근 하세요?" "속은 어떠세요?"
1분 남짓한 의사와의 전화. 그리고 정확히 45분 후 집앞으로 약봉투가 집에 도착했다.
내가 경험한 원격 진료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은 것이었다. 며칠 전 점심식사 자리에 헐레벌떡 뛰어갔다 몸에 열이 올라 식당안 발열 체크기에서 울리는 경고음에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열이 나면 병원에 쉽게 들어갈 수 없다. 약국도 마찬가지일테다. 원격 진료는 당시 내가 약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내 체크카드에서 빠져나간 금액은 총 7100원. 진료비가 4900원이었고, 약값은 2200원이었다. 1분 남짓한 통화에 4900원을 내야한다는 데에 잠시 주춤했으나, 생각해보면 이건 대면 진료였어도 똑같이 내야할 돈이었다.
물론 이 금액은 '배달비'가 제외된 금액이다. 내가 사용한 원격 진료 앱은 코로나19 극복을 기원한다며 한시적으로 배달비를 받지 않는다 했다. 정상적인 배달비는 5000원. 음식 배달비인 3000원과 비교하면 비싼 편이나 열이 펄펄 끓는 몸을 이끌고 병원과 약국을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가끔은' 지불할 수 있을 금액이라 느껴졌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경험한 원격 진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 원격 진료 서비스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의사 및 약사단체가 코로나19 기간 동안 허용된 원격 진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2월 감염병 예방 및 관리법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각 단계인 경우에 한해서 원격진료와 약 배달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원격 진료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새싹 산업이다. 그리고 한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IT 강국이다. 원격 진료에 체계적인 '신원인증 절차'를 도입하면 동일 인물의 의약품 반복 구매를 막을 수 있다. 고도화된 '화상 진료'를 도입하면 부정확한 진찰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막 심은 나무에 해충이 생겼다고 뿌리를 뽑아버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이야기다.
물론 편리함에서 오는 한계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단순 편리함이 누군가에는 '간절함'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주변엔 코로나19와 무관하게 집밖에 나서기 힘든 분들이 아주 많다. 거동이 힘든 노인, 신체가 불편한 장애인,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까지. 정말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ukgeu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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