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현장] '럭셔리 그 자체' 카타르 WC 결승 경기장, 대회 끝나면 없어진다?
(베스트 일레븐=도하/카타르)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 주변은 아직 어수선했다. 주변 부대 시설이 완성되지 않아 좀 더 공사가 진행되어야 할 상황이었다. 그래도 90% 이상 틀을 잡은 모습이었다.
피치와 관중석 등 내부 시설은 거의 틀이 잡힌 모습이었고, 대회가 열릴 시점이 되면 역대 최고의 월드컵 스타디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기대를 하게 했다. 그런데 이제 갓 태어난 이 환상적인 스타디움의 수명이 고작 1년 남았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내년 11월 21일 킥오프할 카타르 월드컵은 총 8개 스타디움으로 한 달간 열전에 들어간다. 이중 카타르가 가장 공들여 만드는 경기장은 단연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7년부터 공사에 들어간 이 스타디움은 이제 막바지 공사 단계에 돌입한 상태다. 총 관중 규모 8만 석에 달하는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은 개장 즉시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제치고 '아시아 최대 축구전용구장'으로 등극하게 된다. 역대 월드컵 결승 경기장을 통틀어서도 그 덩치가 결코 작지 않다.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도 상당해 보인다. 외형은 카타르 지역의 전통 선박인 다우를 형상화했으며, 내부는 아랍 지역 특유의 그릇 모양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현장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이 경기장의 특징은 바로 금색으로 터치된 색채다. 이 색채는 내부 스탠드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 일단 눈으로 접하면 굉장히 럭셔리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 밖에도 유럽 톱 클래스 스타디움 수준이다. 유럽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대형 원형 라커룸에는 선수단에 필요한 모든 시설이 다 자리하고 있다. 100% 완공된 모습을 접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긴 해도, 지금까지 완성된 모습만 봐도 정말 웅장하다.
그런데 이처럼 가질 것 다 가진 이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빅 매치를 즐길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현지에서 만난 아비라시 나라파트 카타르 월드컵 조직위원회 미디어 오피서는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은 대회가 끝나면 사라진다"라고 말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용도가 바뀐다.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에는 대회가 끝난 후 학교·상점·카페·스포츠 시설·건강 클리닉 등 다양한 시설이 입주한다. 최상층은 이 경기장에 자리하게 될 주택 시설의 야외 테라스로 조성된다.
그리고 8만 석에 달하는 관중석은 대부분 제거된다. 물론 그냥 폐기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 등 이웃 저개발 국가에 스포츠 시설로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대회가 끝나면 축구 경기장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것이다.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이 과거 월드컵 결승전으로 쓰인 곳이라는 흔적은, 그래도 외형을 유지할 지붕이 전부일 것이다.
경기장이 자리한 루사일 지구는 서울로 치면 과천·의정부 같은 근교 위성 도시라 볼 수 있는데, 이곳에 다소 부족했던 지역 커뮤니티 허브 시설로 재탄생하게 된다. 카타르가 이러한 선택을 내리는 건 꽤 흥미롭다. 더욱이 부족했던 축구 인프라를 2002 FIFA 한·일 월드컵 개최를 통해 단번에 해결했던 우리의 경험을 고려할 때, 만들자마자 철거하고 다른 용도로 쓰겠다는 카타르의 판단이 쉽게 납득이 안가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히 이성적인 판단일 수 있다. FIFA에서는 월드컵 개최국에 최소 4만석 이상의 월드컵 경기장을 건축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그런데 무턱대고 월드컵 경기장을 막 지었다가는 대회 후 유지 관리하는 데 엄청난 비용으로 고통받는 일이 허다하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가 그랬다. 지금도 상업 시설이 입점한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장들에서 어마어마한 유지 보수 비용이 들어간다. 가히 '대대적 출혈'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심지어 '축구 천국' 브라질도 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였다.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에 쓰였던 몇몇 경기장이 잔디를 걷어내고 주차 시설로 쓰는 등 여러 대안으로 겨우 유지 비용 출혈을 감당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기도 했다. FIFA는 대회가 끝나면 발생한 수익을 손에 쥐고 개최국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개최국은 이처럼 월드컵 이후 만들어진 경기장 때문에 현실적인 고뇌에 빠지게 된다.
과거 월드컵 개최국이 겪고 있는 후유증을 고려해서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모르겠으나, 결과적인 측면에서 카타르는 역발상을 한 듯하다. 만들 때부터 경기장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카타르처럼 일단 월드컵 경기장을 멋지게 지은 후 대회가 끝난 뒤 완전히 새로운 건축물로 리노베이션을 하면, 확실히 과거 월드컵 개최국이 겪은 고통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꽤 똑똑한 판단을 한 것이다.
다만 '축구적 관점'에서는, 그래도 아쉬움이 든다. 그냥 월드컵 경기장과 결승전이 치러지는 월드컵 경기장은 그 의미가 크게 차이 난다. 다른 경기장은 몰라도 '간판'이라 할 수 있는 월드컵 결승전 경기장은 월드컵 개최국만이 가질 수 있는 '국보'로서 가치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상징적인 경기장이다.
그래서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의 '축구 경기장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니, 조금은 아깝다는 생각이 자꾸 밀려든다. 물론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표출된 노파심일 수도 있다. 그들이 고심 끝에 내린 현명한 판단이길 빈다.
글·사진=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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