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나의 창업유산답사기

이현송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대표 2021. 1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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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칼럼]이현송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대표

2019년은 직장 생활한 지 11년차 되던 해였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성실한 월급쟁이로 밥값은 해왔다고 믿었으며, 그 중 7년을 VC에 근무하며 창업자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아 왔다고 생각했다. 막연하게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지금의 법인을 설립한 후, 전술한 자부심과 믿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데에는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사무실 쓰레기통의 쓰레기는 저절로 비워지는 것인 줄 알았다. 월급날과 임대료 납부기일은 쏜살같이 오고, 급여를 받는 게 신나지 않는 스스로가 낯설어졌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메꿨던 동료가 낸 협업의 구멍도, 구멍을 낸 직원을 내가 직접 채용했다는 사실에 새삼 절망스러웠다. 그 와중에 이제 더 이상 (그간 회사 생활의 단골 주제였던) 회사 욕과 대표이사 험담을 할 수는 없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대표이사 책임이다.

스타트업 생태계 내 청춘남녀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에 피식거리며, 드라마 서사와 현실의 차이를 안주 거리로 삼았으나, 그 현실이 이렇게까지 자질구레하고, 정신 사나우며, 잠이 안오는 일일 줄은 미처 몰랐다. IR 자료의 서두를 여는 회사의 미션과 시장의 문제점,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수없이 마주치며 창업을 안다고 착각했었다. 늘 보는 스타트업 IR 자료의 비장하고 패기 넘치는 청사진 뒤에는 사실상 그 청사진과 전혀 관계없을 것만 같은 오만가지 일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말이다.

인력과 재원이 한정된 창업 초기 기업은 목표했던 사업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운영하며 발생하는 모든 부차적인 문제의 해결은 모두 창업자 대표의 몫이다. 시장의 혁신을 이루는 대가로 얻는 초과 이윤의 비전은 어느샌가 가물가물해지고, 매일 튀어나오는 문제를 해결하며 바쁘게 살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자정. '오늘 왜 이렇게 바빴지' 싶어서 했던 일들을 복기하다가, 은행을 들락거리고 법무사 및 회계사와 씨름을 하고, 납부 기한 마지막 날 아슬아슬하게 부가세를 납부하며 안도했던 순간들이 조직의 비전 및 회사의 미션과 무슨 관계인가 싶은 생각에 이르면 좌절감은 배가 된다. 해내고 싶은 일을 가장 잘 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표가 당장 해야 하는 일은 사실상 본인이 하고 싶었던 일을 제외한 세상 귀찮고 하찮은 모든 것들이다. 이 과정에서 얻는 초능력, 이를테면 각종 비용 출금 계획을 짤 때 자본금 잔액이 머릿속에서 만원 단위로 자동 계산이 된다든지, 횡단보도를 건너며 휴대폰으로 계약서를 수정한다든지, 사업 파트너나 채용 대상자에게 우리 회사 한 번 믿어보라고 드러눕는 철면피가 된다든지 등의 능력치 향상이 있긴 하지만, 사실 살면서 전혀 가지고 싶은 적 없었던 능력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뚫고 겨우 시간을 내어 나를 만났을 초기 기업 대표님들께, 급한 일 말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셔야 한다고 입바른 소리를 했던 나의 과거를 뼈저리게 반성한다. 나의 훈수와 투자를 받아 주신 초기 창업자 대표님들이 내가 이렇게 지내는 것을 알면 얼마나 쌤통이려나 싶어 매일 밤 이불을 찼다. 그러나 이 시기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다독여, 신생 투자사로서의 커리어를 쌓을 수 있게 도와 주신 것도 결국 같은 처지에 있는 창업자 대표님들이었다는 게 운명의 아이러니다.

극초기 기업 상태를 갓 벗어난 지금도 처리해야 할 문제 투성이지만, 매번 자정 즈음하여 날아오는 포트폴리오 기업 대표님들의 월간 리포트를 보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대표의 책임이겠지만, 이렇게 눈비를 맞다 보면 언젠가 시절을 아는 좋은 비가 내릴 것임을, 그 비의 끝에는 창업자의 꿈으로 흠뻑 적셔진 세상이 펼쳐질 것임을 믿는다. 그 때까지 모든 창업자 대표님들이 시험과 감기에 들지 않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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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송 스마트스터디벤처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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