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득 사건 1000일]⑤ 조현병 조기치료 '몰라서·알고도' 안해.. 골든타임 지키면 일상생활 문제 없다

이학준 기자 2021. 11.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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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센터 이용 안하는 이유 1위 '있는지 몰라서'
알아도 방문 어려워..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
마인드링크 김성완 교수 "조기 발견, 빠른 치료 중요"

[편집자 주] 2019년 4월 17일 안인득이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와 흉기난동으로 5명을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한 지 1000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안인득은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고, 안인득 사건 이후 ‘조현병 포비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공포심이 커졌다. 하지만 안인득은 살인자 이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된 환자였다. 전문가들은 안인득이 제대로 된 관리와 치료를 받았다면 이런 끔찍한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올해로 정신분열증을 조현병으로 부른 지 10년이 됐다. 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을 없애기 위해 병명을 바꿨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조현병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적절히 관리하지도 못하고 있다.

군 복무를 하던 A씨는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밤에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증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됐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결국 A씨는 군 복무를 마치지 못한 채 전역했다.

A씨는 사회에 나온 뒤에야 자신에게 나타난 증상이 조현병 의심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지역복지센터 추천으로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마인드링크’와 대학병원 연계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증상은 빠르게 완화됐고, 현재는 대학교에 복학해 일상생활을 하고 있다.

조기 치료를 통해 빠르게 증상이 완화되는 A씨 모습을 지켜봤던 마인드링크 관계자는 “치료를 빨리 해야 치료도 가능하다”고 전했다.

광주광역시 북구에 위치한 청년정신건강복지센터 마인드링크의 상담실 모습. /송복규 기자

지난 11월 18일 전라도 광주광역시 마인드링크에서 만난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은 A씨처럼 조기에 발견해 빠르게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현병은 첫 발병 이후 약 3~5년 동안의 치료 결과에 따라 장기적 예후가 결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꿔서 말하면 발병 이후 3~5년의 시기를 놓치면 치료가 쉽지 않아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조현병 환자들은 증상이 시작된 이후 약물치료를 시작하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게 좋다”며 “조기 치료를 잘 받은 환자는 일상생활에서도 조현병을 앓고 있는지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을 되찾는다”고 말했다. 이어 “조기 치료자의 70~80% 정도는 사회 활동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라며 “조현병 환자에게 치료를 꾸준히 받은 것과 방치하는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현병 환자의 대부분은 A씨처럼 조기 치료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조현병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오판하거나 주변에 마인드링크와 같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현병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마인드링크와 같은 치료 시설을 알고 있더라도 ‘조현병은 범죄를 일으키기 쉽다’ ‘사회에서 격리돼야 한다’ 등 사회적 편견과 혐오가 두려워 치료를 하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경우도 많다. 마인드링크 회원이자 조현병 환자인 박모(28)씨는 2019년부터 조현병 증상을 겪은 이후 대학병원을 찾아 치료를 시작했다. 조현병 진단을 받았으니 당연히 병원에서만 치료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박씨는 입원하지 않은 채 약물복용만 했지만, 치료는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병원에 환자가 몰리면서 상담 시간은 계속 짧아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의사로부터 “센터를 찾아가 보라”는 권유를 받고 나서야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마인드링크를 찾았다. 박씨는 조현병이 발병한 지 약 1년이 지난 지난해부터 마인드링크에 다니기 시작했다. 박씨는 “마인드링크는 상담을 비롯해 고민·취업 문제도 다 들어주니까 마음이 편하다”며 “약물복용 프로그램, 그룹 인지행동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를 알고도 편견과 차별이 두려워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마인드링크에 다니고 있는 B씨는 가족이 치료를 반대하면서 조현병 증상이 악화됐다. B씨 가족들은 자식이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며 치료를 반대했다고 한다.

B씨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고, 뒤늦게 마인드링크에서 약물 치료를 받은 뒤에야 상태가 호전됐다. B씨의 가족은 여전히 치료를 반대하고 있으나 마인드링크 관계자가 매번 설득하고 있다.

그래픽=이은현

한국과학기술 한림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민 중 약 15%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39.2%, 호주 34.9%, 뉴질랜드 38.9%와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중 1위는 ‘몰라서’였다. 2위는 ‘알고도’였다. 박씨 사례가 1위, B씨 사례가 2위인 셈이다.

한국은 ‘몰라서’와 ‘알고도’가 반복되면서 조현병 조기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국은 조현병 발병 이후 첫 치료를 받기까지의 평균 기간이 약 56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12주보다 4배가 많다.

예후에 가장 중요한 시기인 발병 후 첫 6개월 동안 조현병 환자 52%는 정기적 외래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퇴원 1개월 내 외래치료 지속률 또한 62%로 WHO 회원국 중앙값인 73%에 미치지 못한다. 반면 재입원율은 37.8%로 OECD 회원군 평균 11~13%보다 약 3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몰라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현병에 대한 교육과 함께 사회 곳곳에 준비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고, ‘알고도’를 해결하려면 조현병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 18일 마인드링크 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성완 전남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복규 기자

미국은 정신건강 응급처치(Mental Health First Aid)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정신건강 문제가 발생하거나 기존 정신건강 문제가 악화된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지역 주민 등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마인드링크와 같은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늘리기 위해 관련 예산을 늘리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주거·직업 복지 수준을 신체장애인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모두 포함하지만, 복지혜택에 있어서는 신체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 교수는 “아직도 환자들의 부모 세대 중 정신병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치료나 상담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도 환자들을 숨게 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인드링크가 효과적인 이유는 환자들의 자발적 접근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며 “사회적 인식을 많이 개선해 조현병 환자들이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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