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통신] 휴가도 밥값도 마음대로..'개발자 천국' 키운 자율성

윤지혜 기자 2021. 11.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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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혁신을 이끄는 '네카라쿠배' 등 IT기업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취업 꿀팁부터 서비스 출시에 얽힌 뒷얘기를 솔직·담백하게 전합니다.

정상호 당근마켓 피플팀 매니저. /사진=당근마켓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당근마켓·토스) 중 당근마켓은 역사가 짧고 규모도 가장 작지만, 국내 대표 IT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신흥 '인재 블랙홀'로 떠올랐다. 이제 겨우 6살 된 막내 당근마켓에 A급 인재가 몰리는 이유는 뭘까. 대기업 이상의 초봉(6500만원)과 업계 최고 수준의 계약금·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이 화제가 됐지만, 정작 직원들은 장점으로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꼽는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삶의균형)이 화두인 요즘, 일이 곧 삶인 '워라인'(Work-life integration·일과삶의통합)형 인재들이 눈치 보지 않고 몰입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쉼이 필요할 땐 자유롭게 휴가를 떠나면 된다. 일수 제한도 없고 조직장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업무 중 식사비나 자기 계발을 위한 도서·교육비는 무제한이다. 일과 삶의 비중을 어떻게 가져갈지 개인의 판단에 맡기되, 이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철학이 담겼다.

"최고의 복지는 유능한 동료"라고 했던가. 자발적으로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자, 당근마켓에 지원하는 사람들도 늘기 시작했다. 특유의 조직문화가 알려지기 전부터 이미 IT업계에선 '개발자의 천국', '창업가들이 창업을 배우는 곳'으로 입소문이 났다는 후문이다. 덕분에 2019년만 해도 30여명에 불과했던 조직 규모는 올해 240여명으로 2년 만에 8배 성장했다.

조직이 급성장하면 문화도 그만큼 변화하는 법. 2019년 당근마켓에 34번째 멤버로 합류한 정상호 피플팀 매니저를 서울 서초구 당근마켓 사옥에서 만나 특유의 조직문화와 담당자로서의 고민을 물었다. 그는 당근마켓식 아고라인 '문화회의'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LG디스플레이 인사팀 출신인 그에게 스타트업의 인사 철학은 "한 대 맞은 것처럼" 놀랍고 새롭게 다가왔다고 한다.
대기업→스타트업, 조직문화 '하늘과 땅' 차이
정상호 당근마켓 피플팀 매니저. /사진=당근마켓
-대기업을 다니다 스타트업에 들어오게 된 계기는?
▶개발자 친구와 창업하기 위해 회사를 왔는데, 막상 법인구성이나 투자·채용·IR 쪽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스타트업에 가서 처음부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19년 8월에 당근마켓에 합류했는데, 그땐 인사뿐 아니라 경영지원업무를 하는 분도 없어 혼자 HR 전반을 담당해야 했다. 현재는 팀원이 많이 늘어 평가보상 및 내부 시스템관리, 조직문화 등을 담당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스타트업까지 모두 경험했는데, 조직 규모별 특징이 있나?
▶신뢰와 공감대 형성 차원에서 정보공유는 매우 중요한데, 조직이 클수록 쉽지 않다. 당근 마켓 초창기엔 '탁구대를 치운다'는 작은 정보도 전사에 공유됐다. 임직원 간 '척하면 척'이었지만, 최근엔 커뮤니케이션이 줄다 보니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놓치는 정보도 많아졌다. 이때문에 대기업은 주로 제도와 규칙으로 소통하려 하지만, 자칫 구성원 간 오해가 발생할 수 있다.

당근마켓이 급성장하면서 그에 따른 조직문화와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만의 핵심 DNA는 유지·강화하면서 새로운 방식을 어떻게 도입할지다. 인사 담당자 입장에선 단계마다 제도와 문화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돼야 한다. 30명일 때 모습을 200명일 때도 유지하려고 하면 좋은 회사가 아니라 어설픈 회사가 된다.
복리후생은 비용 아닌 '투자'…"'워라인' 자율성 믿는다"
-당근마켓은 자율 출퇴근제와 휴가제를 운용 중이다. 일각에선 근무시간을 특정하지 않으면 부서 간 협업이 어렵고, 자칫 일이 많은 부서는 휴가를 가지 못해 워라밸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근마켓은 회사가 규칙을 정해주지 않아도 구성원들이 자율적으로 근무·협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유능한 인재에게 과도하게 일이 몰려 휴가를 가지 못한다면 채용을 늘리는 등의 대안을 찾지만, 그 외 영역에 대해선 개인의 판단을 존중한다. 본인이 쉬고 싶으면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당근마켓엔 워라밸보단 워라인형 인재가 많다. 워라밸은 일 이후 나의 진짜 삶이 찾아온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일을 부정적으로 보는 거다. 그런데 일을 통해 삶의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일과 삶을 구분 짓지 않는 사람들은 퇴근하고서도 동료들과 '어떻게 서비스를 개편하면 이용자가 좋아할까' 신나게 이야기하는데, 이런 분들의 자율성을 믿는 거다. 다만, 동료 간 신뢰를 위해 업무 진행 상황을 잘 공유하는 데 방점을 둔다.

-식사비·도서비·교육비·구독비 무제한 지원도 눈에 띈다. 비용관리 차원에서 고민이 많겠다.
▶성장하는 스타트업이 전통적인 기업과 가장 다른 점은 파이가 고정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성장을 끝낸 기존 기업은 매출이 크게 성장해도 10~20% 내외기 때문에 비용관리에 사활을 건다. 이미 정해진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 분배의 이슈가 등장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인사담당자들은 각종 기준을 만든다.

반면 스타트업은 성장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 내년에 갑자기 500%, 5000% 성장할 수도 있다. 이런 환경에선 복리후생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바라본다. 구성원 한 명에게 1000만원을 지원하면, 향후 10억원을 벌어줄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거다. 또 외부교육을 들은 직원들이 이를 업무에 적용하거나, 동료들과도 공유할 수 있다. 이처럼 긍정적 외부효과를 일으키는 복지에 아낌없이 지원하려 한다.

-법인카드로 무제한 식사비를 지원하는 건 국내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복지다.
▶식대를 정하자는 의견이 나온 적은 있었다. 신규입사자들이 대체 얼마를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더라. 결론적으론 정하지 않기로 했다. 한번 규칙을 정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에 대한 절차와 예외사항에 대한 규칙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밥 걱정 없이 맛있는 걸 먹으며 동료들과 친해지길 바란 건데, 자칫 이상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던 셈이다.
취중진담 같은 회사얘기도 공개적으로…"문화 핏(fit) 맞는지가 관건"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진행하는 '문화회의'가 인상적이다. 조직문화에 대해 직원들이 자유롭게 참여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인데, 이를 만들게 된 배경이 있나?
▶문화회의는 의사결정기구가 아니라 맥락을 공유하는 자리다. 통상 80여명이 참석해 근무제도나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한다. 흔히 회식 후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얘기할 법한 암묵지를 회사 내에서 공유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최근 입사한 한 직원은 직급과 관계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문화회의를 보고 '새로운 충격'이었다고 했다) 피플팀은 이를 반영해 제도를 만드는데, 다양한 의견이 나오다 보니 조율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유능한 인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자유와책임(F&R) 원칙이 떠오른다. 다만 국내에선 넷플릭스처럼 성과가 부진한 직원을 해고할 수 없는데, 당근마켓의 인재관리 방법이 있나.
▶그래서 당근마켓은 채용을 강조한다. 면접관들은 '나보다 뛰어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합격점을 준다. 그러다 보니 당근마켓 채용기준이 너무 높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당근마켓이 비슷한 서비스 대비 인원수가 적은 이유이기도 하다. (당근마켓 과제전형을 따로 두는 등 채용과정이 어렵고 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일반적으론 실무면접 다음에 형식적인 경영진 면접을 진행하지만, 당근마켓은 마지막에 문화적합성(컬처핏) 면접을 본다. 지원자 1명당 최소 3명의 면접관이 1시간 이상 면접을 보며 우리 문화에 어울릴만한 사람인지 평가한다. 지원자가 3명이면 하루에만 4시간30분 이상을 면접에 할애해야 하지만, 그만큼 채용을 중요시하는 거다. 이렇게 뽑힌 분들이다 보니 근무 태만 등 우려할만한 일들이 적다.

-조직문화 담당자의 고충도 클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 어울리나?
▶조직문화는 정답이 없다.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딱 맞아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보단 황량한 사막에서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재밌는 일이다. 또 조직문화는 담당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이 회의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방식, 옷차림 등이 영향을 미친다. 이들이 좋은 문화를 만들어갈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라는 점에서 수용성이 높은 사람이라면 구성원들이 편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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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혜 기자 yoonji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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