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힘내라, '미개봉 중고' 신입생!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잡지 편집 실무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지난주에는 잡지의 꽃이라 할 ‘인터뷰 기사’ 쓰는 법을 강의하고 특별 과제를 냈다. 단기간에 인터뷰 대상자 선정부터 인터뷰(취재), 기사 작성과 인터뷰 콘셉트에 대한 발표까지 마쳐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 저리 가라 하는 과제였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예정된 시간에 인터뷰를 성공리에 마쳤다. 그뿐만 아니라 저마다 각기 다른 대상자를 선정, 중복 한 명 없이 개성 있는 인터뷰 기사를 선보였다.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인터뷰를 마무리해 웃음을 자아냈다.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열 명만 살아났는데,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섯 명만이 과학자가 개발한 캡슐로 들어가야 합니다. 현재 변호사와 그 아내, 대학 1학년 여대생, 프로축구 선수, 소설가, 여배우, 과학자, 경찰, 목사, 외국인 노동자 열 명이 있는데,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흡사 취업 면접에서나 볼 법한 질문을 인터뷰 대상자에게 던져 그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답변을 얻은 것이 웃음 포인트였다.
반면 또 다른 학생은 대학에 들어와 단 한 번도 대면 수업을 해보지 못한 20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을 인터뷰해 눈물을 자아냈다. 본래 ‘미개봉 중고’는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중고품이지만 포장조차 뜯지 않은 새 물건이라는 뜻으로 쓰이던 말이다. 이 말이 요즘은 대학으로 넘어 들어와 ‘미개봉 중고 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 등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로 통용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단 한 번도 대면 수업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캠퍼스 생활도 누려보지 못한 20학번, 21학번 학생들을 지칭하는 말이 된 것이다.
수업을 듣는 한 학생이 인터뷰한 ‘미개봉 중고 신입생’은 코로나19로 대학 입학 전 고등학교 졸업식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학교에 입학했지만, 얼마 전에는 KT 통신 장애로 비대면 수업 중 강의가 중지돼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래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리라는 생각은 못 했는데 벌써 2년이나 지나 버려 아쉽다고 했다.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 모두를 경험한 이전 학번과는 달리, 미개봉 중고 신입생들은 대면 수업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동아리방에서 동아리 생활을 즐기거나, 동기·선배들과 어울려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하고, MT도 가고, 축제에서 연예인들을 보며 크게 소리도 한번 질러보는. 코로나 사태 이전에 대학을 다녔다면 누구나 경험했을 평범한 ‘캠퍼스 라이프’를 이들은 진심으로 꿈꾸고 있었다. 특히 이제는 졸업한 유튜버들이 찍은 대학 생활에 관한 브이로그를 보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캠퍼스 라이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곤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마음을 울렸다.
2년 동안 온라인 뿐이었던 대학 생활이 이제는 끝이길 바라면서, 코로나19 이전의 대학생들처럼 오프라인 대학 생활을 꿈꾸는 학생들. 내년에도 비대면 수업이 계속된다면, 이들은 4년 대학 생활 중 절반 이상을 온라인으로만 경험하게 된다.
요즘 대학생들이 코로나 블루를 겪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비대면 수업이라고 한다. 20·21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들은 과연 본인들이 대학 생활을 하고 있는 게 맞는지, ‘고등학교 4학년’인 건 아닌지 혼란을 겪기까지 한다. 대학 생활과 함께 시작되는 새로운 인간 관계도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내년에는 이들이 꿈꾸던 대학 생활이 ‘개봉’될 수 있을까.
팬데믹으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하는 코로나 학번 ‘미개봉 중고 신입생’들의 남은 대학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김미향 출판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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