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이강철의 ‘쨍하고 해 뜰 날’

강호철 스포츠부장 2021. 11. 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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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헹가래를 받고 있는 KT 이강철 감독./스포츠 조선

프로야구 챔피언을 결정짓는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어김없이 한 시즌 내내 팀을 지휘한 감독의 리더십이 주목받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야구를 빛낸 김인식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펼친 ‘믿음의 야구’, 냉철한 승부사인 김성근 감독의 ‘관리 야구’는 기업들도 관심을 가진 리더십 모델들이다. 올해 KT위즈를 2022년 프로야구 챔피언으로 끌어올린 이강철 감독은 한국시리즈를 4전 전승으로 마무리한 뒤 “언젠가 최고가 될 순간을 꿈꾸며 참고, 또 참았다. 그리고 그때를 위해 끊임없이 준비했다”고 했다. 그의 리더십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인내’ 아닐까.

이강철 감독은 프로야구 통산 최다승 3위, 탈삼진 2위 기록 보유자다. 1980~90년대 최강으로 군림하던 해태 타이거즈의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다섯 차례나 우승 축배를 들었다. 그런 레전드가 도대체 무엇을 참아야 했고, 무엇이 아쉬웠을까.

이강철 감독은 화려한 성적과는 달리 늘 ‘2인자’ 꼬리표를 달고 살았다. 광주일고 시절엔 1년 선배인 문희수, 동국대에선 역시 1년 선배인 송진우의 빛에 가렸다. 프로 무대를 밟으니 선동열, 조계현 같은 당대 최고 투수들이 더그아웃에 떡 버티고 있었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나니 기량이 일취월장한 이대진이 에이스 자리를 꿰찼다.

이 감독에겐 레전드라면 적어도 두세 개는 지니고 있을 개인 타이틀도 아예 없다. 1992년 다승왕을 넘봤으나 시즌 2경기를 남겨두고 감독의 밀어주기 배려 속에 중간계투로 등판해 승리를 거둔 빙그레 에이스 송진우에게 1승 차이로 다승왕 자리를 내줬다. 이 감독은 시즌 최종전에서 빙그레를 상대로 역투했지만, 장종훈에게 8회말 역전 결승 2점 홈런을 얻어맞고 다승 2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감독은 그해 탈삼진 1위였지만, 당시엔 개인 타이틀 대상이 아니었다.

이강철 감독은 2005년 은퇴 후 2018년까지 13년 내리 코치 생활을 했다. 그사이 후배들이 감독 지휘봉을 잡고 그라운드를 호령했다. 그는 고민 끝에 “선수 때 잘했던 기억 모두 잊고, 후배 감독들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해태를 떠났다. 넥센과 두산 수석코치로 일하면서 여러 차례 사령탑 후보로 물망에 오르긴 했지만, 그때마다 실망만 느꼈다. 이 감독은 “야구판을 떠날 생각보다 영원한 킹메이커였던 김종필씨를 떠올리면서 수석코치로 ‘최고의 2인자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준비했더니 어느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고 했다. 그는 특유의 온화함으로 선수들을 다독이면서 역경의 순간들을 참아낸 끝에 KT 감독 부임 3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수원시 KT 위즈파크에서 포즈를 취한 KT 이강철 감독./장련성 기자

이강철 감독은 그래도 겸손했다. 10월 갑자기 부진에 빠져 흔들린 팀이 삼성과 1위 결정전(타이브레이커)에서 이기는 운이 따라줘 한국시리즈를 편하게 치를 수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언제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운을 낚아챌 수 있다.

연기자 전원주씨는 데뷔 이후 30년 넘게 식모 역할만 도맡았다. 체념하지 않고 거울 보고 매일 웃는 연습을 하면서 특유의 폭포수 같은 웃음소리를 자신만의 상품으로 만들어냈고, 이젠 자신이 시중들던 여주인공들보다 높은 인기를 오래도록 누린다. ‘영원한 이등 인생은 없다’는 책까지 펴낸 전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가 송대관씨의 ‘해 뜰 날’이다. 그 가사처럼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꿈을 갖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려 노력하면 언젠가 인생에 해 뜰 순간, 별을 낚아챌 순간이 찾아온다. 어디 이강철 감독이나 전원주씨만의 얘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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