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등 돌리는 EU
지난 25~26일 화상으로 열린 1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를 계기로 유럽의 대(對) 아시아 정책이 중국 중시(重視) 기조에서 벗어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시아에서 중국과의 경제 관계 강화에 몰두했던 유럽이 이제는 중국과 거리를 두고자 한다는 것이다. ASEM은 아시아·유럽의 관계 강화를 목적으로 1996년 출범했으며 현재 아시아 21국과 유럽 30국이 참여하고 있다. 캄보디아가 의장국을 맡은 올해 회의 주제는 ‘동반 성장을 위한 다자주의 강화’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5일 이 회의에서 “보편적인 민주적 권리와 기본 자유를 바탕으로 협력을 심화하자”고 말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7일 “EU가 중국의 패권 확대를 경계하며 기본적인 가치를 공유하는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들에 손을 내밀었다”고 분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홍콩 및 신장 인권 문제로 유럽과 중국의 외교관계가 급속히 악화됐으며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유럽에서 중국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3월 EU는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에 연루된 중국 관리 4명과 단체 1곳을 제재한다고 밝혔다. 가디언은 “EU가 30년 만에 대중(對中) 제재에 착수했다”면서 “(유럽·중국 관계가) 루비콘강(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건넜다”고 평가했다. 9월에는 EU가 대만과의 관계 강화 내용 등을 담은 첫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고, 지난달 21일 EU의회는 대만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압도적 찬성표로 통과시켰다. 이달 3일에는 의회 대표단이 이례적으로 대만을 공식 방문했다.
유럽 각국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곧 출범을 앞둔 독일 연정 정권은 “민주적인 대만이 국제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리투아니아는 7월 수도 빌뉴스에 주(駐)리투아니아 대만대표처 설치를 허가했다. 네덜란드는 지난 22~25일 터키에서 열린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총회를 앞두고 외교부 장관과 의회가 대만의 인터폴 가입을 공개 지지했다.
영국·독일·프랑스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로의 회귀’를 서두르고 있다. 영국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는 지난 7월 남중국해에 진입했으며 독일도 약 20년 만에 이 지역에 군함을 보냈다. 프랑스는 지난 4월 자국 군함이 대만 해협을 통과하도록 했다.
중국과 거리 두기에 나선 유럽 국가들은 일본⋅아세안⋅인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와 인도네시아의 외교 수장은 지난 24일 자카르타에서 회담을 갖고 양국의 방위 협력 강화를 위해 2022년 외교·안보 각료급이 참여하는 ‘2+2′ 채널을 만들기로 했다. EU는 인도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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