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자기만의 방’ 갖기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면서, 여성은 남성을 실제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거울 노릇을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울프에 따르면, 남성이 쓴 픽션 안에서 여성은 트로피로 쓸 만한 처녀이거나 죽여 마땅한 희대의 악녀로 나뉘는 때가 많다. 여성 캐릭터가 납작하고 단순한 만큼 남자 주인공이 쉽게 빛날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동안 무수한 문학 작품들에서 여성 캐릭터는 남성을 빛내주는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다.

/일러스트

울프는 당시 사회에선 하찮게 여겨지던 여성이 픽션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아이러니를 ‘기묘한 복합체’라고 소개했다. 그는 여성에게 다른 무언가가 될 생각을 멈추라고 강조했다.

나는 남자 얘기 안 하는 여성주의 책을 읽고 싶었다. 여성이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돈 벌고, 일하고, 친구 사귀는 일이 훨씬 궁금했다. 그래서 초반부에 여성과 남자를 비교하는 대목이 등장했을 때는 조금 지루했다. 명품과 돈을 밝히는 여자를 낮잡아 말하는 신조어 ‘된장녀’와 ‘김치녀’가 생기고, 이에 대항해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한남’이란 말이 생겼을 때, 남녀가 갈려 극한 분노를 내뿜으며 대결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드렁했던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다음 장을 읽자마자 울프가 여성 이야기를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울프는 사회가 그리는 ‘가상의 여성’에 만족하지 말라고 소리치면서, 여성에게 필요한 건 외부적인 시선의 폭력으로부터 단호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온전한 존재로 있을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라고 말한다. 방해받지 않고 한 가지를 깊게 생각할 수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울프는 언젠가 온전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여성 작가가 반드시 나타날 것이란 희망을 가졌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백년 전 울프가 가진 희망이 나에게도 있다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이 더 많이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용기 있게 쓰면서 살아갈 날들을 기대해본다.

일사일언/임규연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