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이 미래” 115년간 쓸 방폐장 짓는 프랑스

정철환 특파원 2021. 11.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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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100년 大計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2021년 11월 24일(현지 시각) 프랑스 시골 마을 뷔르에 건설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보관 장소 ‘시제오(Cigeo)’ 내부 모습. 현재 연구 목적의 시험 갱도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2025년 이후 가로 5㎞, 세로 3㎞에 달하는 초대형 시설로 탄생할 예정이다.

프랑스 파리 동쪽 230km에 위치한 시골 마을 뷔르(Bure). 지난 24일 찾은 이곳은 드넓은 들판에 목초 뭉치만 드문드문 눈에 띄는 전형적인 프랑스 농촌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프랑스 국민이 앞으로 100년 이상 에너지 걱정 없이 살게 하겠다는 프랑스 정부의 원대한 ‘야심’이 숨겨져 있다.

들판 한가운데 생뚱맞게 서 있는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자료관 건물이 그 이정표였다. 이 건물 지하 약 500m 아래에는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지하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수만 년 이상 물의 침투나 지형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두꺼운 점토층 안으로 지하 갱도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앞으로 프랑스의 사용후핵연료(폐연료봉) 보관 장소가 될 ‘시제오(Cigeo)’다. 현재는 연구 목적의 시험 갱도가 만들어지고 있고, 2025년 건설이 본격화되면 가로 5km, 세로 3km에 걸친 초대형 시설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원전 가동 후 나오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기간은 2035년부터 2150년까지 약 115년간. 이때까지 프랑스 전국 18곳에 이르는 프랑스 내 원자력발전소(원전)뿐만 아니라, 노후 원전을 대체해 새로 지어질 10여 개 이상의 새 원전에서 나올 사용후핵연료가 프랑스 자체 기술로 재활용·재처리 과정을 거친 뒤 초기 상태의 20% 이하 부피가 되어 저장된다.

이곳의 건설과 운영을 책임진 프랑스 공기업 안드라(ANDRA)는 “시제오는 1991년 근거법 제정, 2005년과 2013년 두 번에 걸친 대국민 공개 토론, 방사능 폐기물 보관 기술의 실증 연구까지 30여 년의 시간이 걸린 대규모 사업”이라며 “프랑스 국민의 지지와 정부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프랑스는 국민과 정부의 단합을 바탕으로 앞으로 100년 이상 안정적으로 원전을 운영할 수 있는 내부 역량을 확보해가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과 운영뿐만 아니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와 폐기, 구형 원전 해체 등 원자력 에너지의 전주기를 국내에서 자국 기술로 해내고 있다.

아직 사용후핵연료 보관 시설도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당장에라도 원전 가동이 중단될 수 있는 한국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한국 역시 1983년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분 시설의 건설과 운영을 추진해 왔으나, 지역 주민과 시민 단체의 반대, 정권에 따라 뒤죽박죽된 정책으로 계속 실패해 왔다. 결국 사용후핵연료를 지난 40여 년간 원전 부지 내에 ‘임시 보관’만 하다 저장 시설이 포화해 초읽기에 몰린 상태다.

파리 서북쪽으로 약 300km, 영화 ‘셰르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항구 셰르부르(Cherbourg) 인근 소도시 라아그(La Hague)에는 세계적 규모의 상업용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이 있다. 약 300만㎡의 부지에 들어선 최첨단 공장에서 연간 1100t의 사용후핵연료가 재처리된다. 이 시설을 운영하는 오라노(orano) 측은 “폐연료봉을 잘게 쪼개 다시 원전의 연료로 쓸 수 있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뽑아내고, 나머지 찌꺼기만 유리로 밀봉해 안전한 상태로 용기에 넣어 보관한다”며 “이 과정을 통해 폐기물의 부피를 5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나온 최종 폐기물은 라아그에 임시 저장되어 있다가 뷔르의 폐기물 시설이 가동되는 2025년 이후 옮겨져 보관될 예정이다. 이 시설이 만들어진 1966년 이후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사용후핵연료는 3만7000t에 달한다. 이 중 2만6000t이 프랑스 원전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3분의 1은 독일(5482t)과 일본(2944t), 스위스(771t) 등에서 위탁받았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가 어엿한 ‘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원자로 해체 분야에서도 프랑스는 앞서 나가고 있다. 파리에서 동북쪽으로 220km, 벨기에와 국경을 접한 아르덴 숲 속의 쇼(Chooz) 원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형 원자로 ‘쇼A’ 의 해체 작업이 대표적이다. 1967년부터 24년간 사용한 300메가와트(MW) 규모의 원자로로, 높이 45m의 거대한 원자로 시설 중 약 80%의 철거가 완료돼 2025년경 끝날 예정이다. 해체 비용은 약 5억 유로(약 6800억원). 프랑스전력공사(EDF) 측은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서 비용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구형 원자로의 해체를 더 우수하고 경제적인 새 원전을 짓기 위한 과정의 하나로 본다. 수명도 짧고, 효율도 떨어지는 구형 원전들을 최신 기술의 원전으로 대체해 발전 효율성을 높이고, 이를 통해 전기료도 낮게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전체 전기 에너지의 67%를 원전에 의존하는 프랑스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1KWh당 230원으로, 기존 원전을 모두 폐쇄하기로 한 독일(408원)의 절반 수준이다.

프랑스는 앞으로 100년 이상 원전을 가동한다고 보고, 원전 해체와 사용 후 핵연료의 재활용·재처리, 그리고 최종 폐기물을 지하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기술 개발을 포함 모든 과정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EDF와 프랑스 원자력 기술 공기업 오라노, 안드라 등이 관련 기술 개발 투자한 돈만 지난해 기준 8억 유로(약 1조800억원) 이상이다. 프랑스 내 56개 원자로에서 비롯되는 자체 수요도 크지만, 외국에 기술을 수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원전 연료 생산 및 사용후재연료 재처리 회사인 일본원연(日本原燃·JNFL)의 엔지니어들이 직접 기술을 배워가기도 한다. 프랑스 원자력 업계 고위 인사는 “프랑스가 원전 전 영역에서 기술을 축적해 해외 시장까지 노리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일관된 원자력 정책과 지속적인 투자, 국민의 지원 덕분”이라며 “한국의 원자력 산업 역시 이 세 가지가 없이는 발전하기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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