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아의 날씨와 얼굴]철새들이 무사히 지나가게 하자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2021. 11.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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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경향신문]

철새가 지나가는 계절이다. 파주에서 살 때는 이즈음 하늘을 가로지르는 철새 무리를 날마다 볼 수 있었다. 부지런히 맨 처음으로 출발한 무리를 보며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고 어제의 철새와 오늘의 철새가 어떻게 다르게 울며 지나갔는지도 기억할 수 있었다. 매일 봐도 감탄스러운 비행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새들의 천재성>이라는 책이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 책에 따르면 새들의 머릿속에는 엄청나게 큰 지도가 있다. 가지고 태어난 지도는 아니다. 배우면서 습득하는 지도다. 경험이 없는 어린 새들은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한다. 어른 새를 뒤따라가면서 길을 익히고 지도를 체화하는 것이다.

일부 어린 새는 어른 새의 도움 없이도 본능적으로 길을 찾기도 하는데 유전자에 새겨진 불가사의한 지능 덕분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 어른 새는 어린 새에게 가르친다. 태양, 별, 편광 등의 단서를 활용하여 나침판처럼 이용하는 방법을. 이 모든 정보가 해가 질 때 한꺼번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황혼이란 새들에게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나에게 해질 녘은 몹시 과학적인 풍경으로 보인다. 내가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방식으로 비행하는 새들을 바라보는 것이 파주의 겨울 저녁 일과였다.

한 번 길을 익힌 어린 새는 다음번엔 어른 새의 도움 없이도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 한 번은 어른 새 대신에 사람이 어린 새를 인도하는 이야기를 보았다. 영화 <아름다운 여행>의 서사가 그렇다. 조류학자의 아들 토마가 기러기를 데리고 새로운 경로로 이동하는 이야기다. 기러기들은 최단거리인 직선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지만 본능대로 움직인다면 위험해질 게 뻔하다. 사람이 만들어놓은 방해물들 때문이다. 공항, 송전선, 사냥꾼, 빛 공해 등이 포진된 하늘길은 새들에겐 죽음의 경로다. 영화는 그것들을 피해 멀리 돌아가는 루트를 짠다. 하지만 날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인도한단 말인가? 이 이야기 속에서는 토마가 구식 비행기를 타고 인도한다. 새들이 토마를 신뢰해서 가능한 일이다. 태어나자마자 본 사람을 보호자로 인식하는 새들이 있는데 기러기도 그런 새들 중 하나다. 막 태어난 기러기들이 자신을 믿게끔 토마는 갖은 애를 썼다. 토마가 이륙하자 기러기들은 그 비행기를 따라 날기 시작한다. 생애 첫 번째 비행이다. 기러기들은 토마와 함께 그린 지도를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기억하고 이동할 것이다. 죽지 않을 수 있는 하늘길의 지도가 기러기들에게 새겨진다. 그들이 살면 멸종 확률도 줄어든다. 토마의 비행은 그야말로 종을 살리려는 의지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긴 했으나 아마도 우화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현실에서 철새들의 처지는 꾸준히 참담해져 왔다. 새들이 아무리 유능하게 난대도 긴 비행을 하려면 중간중간 쉬고 먹는 구간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러한 장소는 갈수록 협소해져간다. 한국의 커다란 갯벌인 새만금은 원래 도요물떼새의 주요 기착지였다. 그러나 방조제로 해수 유통을 막으며 갯벌이 파괴되면서 수십만마리 새의 생존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많던 새들은 영양 보충을 못한 채 장거리 비행을 하다가 죽었을 확률이 높다. 개발사업은 실제로 새를 죽인다. 수면 위 새 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 생물을 대거 죽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새만금 수질 조사에 집중해온 새만금시민생태조사단 오동필 단장의 설명에 의하면, 새만금은 염분성층에 의한 빈산소 수괴로 인해 수심 4m 아래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썩은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시민생태조사단의 자료를 폄하하며 실질적인 갯벌 보존 정책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정부는 현재 새만금신공항 건설 사업을 준비 중이다. 신공항과 철새들의 이동루트는 겹친다. 비행기와 조류가 충돌하는 버드스트라이크가 명백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신공항 건설은 더 많은 새를 멸종에 처하게 할 것이다. 또한 무책임한 매립 사업은 비인간동물뿐 아니라 인간동물의 삶의 자리 역시 협소하게 만들 것이다.

철새들이 제 계절에 하늘을 무사히 가로지르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고 누군가는 무심히 말할 테다. 한편 사람들이 땅을 두고 밥그릇 싸움을 하는 동안 어떤 종은 멸종에 가까워져 간다는 게 괜찮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이들의 움직임이 그립다. 토마처럼 새와 함께 날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새가 나는 것을 방해하지는 말자고 연대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말이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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