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민촌 소년 '울트라 러너의 전설' 됐지만 계속 달립니다"
[짬][짬] 첫 자전 에세이집 펴낸 심재덕 선수
지난 2006년 미국 버지니아주 애팔래치아산맥의 마사누텐 등산로 100마일 달리기(MMT 100마일)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울트라 러너 칼 멜처를 제치고 깜짝 우승한 한국인이 있었다. 대회 주최 쪽은 물론이고 참가자들은 처음 출전한 무명의 한국 선수, 그보다도 그가 세운 기록에 더 놀라워했다. ‘17시간 40분 45초.’ 역대 MMT 최고 기록이었고, 심지어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그때 이후 ‘울트라 러너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고 있는 심재덕(52) 선수가 최근 첫 자전 에세이집 <나는 울트라 러너다>(여름언덕)를 펴냈다. ‘한계는 내가 정한다’를 부제로 내세운 책에서 그는 남다른 성장기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 자신만의 달리기 비법까지 공개해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달 대회 참가를 위해 경남 거제에서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온 그를 만나 책 출간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1969년 괴산 분지골 두메산골 출생
백두대간 백화산 자락 놀이터 삼아
조선업체 6년만에 기관지확장증 얻어
25살 때 사내 달리기 대회 우승 ‘시작’
2006년 미국 대회 세계기록으로 우승
‘나는 울트라 러너다’ 비법도 첫 공개
“유년 시절의 환경과 놀이가 내 달리기의 원동력이 되었다, 혼자서 산길 헤치며 나아가야 할 때, 작은 랜턴 하나에 의지해 칠흑 같은 밤을 혼자 달리면서도 두려움이 장애가 된 적은 없다. 큰 대회를 앞두고 야간 산악훈련을 할 때 멧돼지나 뱀들이 출몰해도 나는 거침없이 달렸다. 어떤 산이든 산속을 달리는 것은 마치 내 고향을 달리는 것과 같았다.”
1969년 태어나 70년대 유년기를 보낸 그의 고향은 도대체 어디일까. “충북 괴산의 화전민촌 분지골(분지리)에서 태어났어요. 백두대간 줄기인 백화산 아래에서 자랐죠. 조령산에서 이화령 고개 너머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놀이터였어요. 때로는 백화산에서 희양산으로 넘어가는 능선 밖 한배미까지 산을 누비고 다녔어요.”
실제로 책에는 그 또래에서는 드문 성장기 체험이 실감나게 적혀 있다. 그는 집에서 학교까지 십리(4km) 비포장 산길을 걸어 다녔다. 그 길목에서 종종 출몰하는 구렁이, 까치살모사같은 뱀도 맨손으로 잡을 정도로 겁이 없었다. 하굣길 어둑한 산길에는 빈 상엿집과 화장터와 공동묘지도 있었고, 여름이면 익사 사고가 빈발해 물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던 저수지도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그 덕분에 남다른 담력도 키우고 밤눈도 밝아진 것 같아요.”
두메산골이어서 먹을거리는 갖가지 나물과 도토리묵 같은 임산물, 어쩌다 저수지에서 잡히는 물고기 정도였다. “온통 채식만 먹고 자랐는데, 그 덕분에 체구는 작아도 끈기는 강한 편이죠. 미국이 자랑하는 ‘울트라 트레일 러너의 신’ 스콧 주렉도 채식주의자죠.”
그런데 그가 들려준 가장 뜻밖의 비법은 ‘다리 힘이 아니라 어깨로 달린다’는 얘기였다.
“아다시피, 울트라 러닝(산악마라톤)은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나 트랙이 아닌 산이나 초원, 숲길 등 자연 속을 달리는 운동이잖아요. 어릴 때 소를 먹일 쇠꼴이며, 키보다 더 높이 쌓은 땔감을 지게로 날랐어요. 울퉁불퉁한 산길에서 지게질을 하면서 균형 감각이 절로 생겼죠. 장작패기를 많이 하면서 어깨와 팔도 단련이 됐고요. 2박3일 동안 달리다 보면 다리가 먼저 풀리는데, 그때부터는 어깨로 몸의 균형을 잡아야 해요.”
이처럼 남다른 성장기만 들으면 천부적인 울트라 러너인 것만 같다. 하지만 정작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이유는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지 6년 만인 24살 때 얻은 직업병 탓이었다.
“선박의 냉난방에 필요한 보온 작업은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어요. 언젠가부터 코로 숨을 쉬기가 힘들어 쌕쌕거렸죠. 입을 점점 크게 벌리고 다녀도 숨을 쉴 수가 없어 병원에 갔더니, 기관지확장증이라는 생소한 병명과 함께 약을 한보따리 줬어요.”
수술을 해도 완치를 기대할 수 없다는 진단에 그는 수술도 포기했다. 대신 이듬해 1993년부터 새벽에 일어나 달려서 출근을 시작했다. 그해 5월 제1회 전사 달리기 대회에 출전했고 일약 우승을 했다. 그 뒤 그의 달리기는마라톤으로 이어졌고, 42.195킬로미터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완주하는 서브 스리(sub-3)를 국내 최초로 100회 달성했다. 지금은 무려 300회를 넘어섰다.
트레일 러닝과 울트라 러닝으로 계속 달린 그는 미국의 웨스턴 스테이츠 100마일, 일본의 하세쓰네 산악마라톤 대회와 노베야마고원 울트라 마라톤 대회, 프랑스의 몽블랑 트레일 대회(UTMB), 이탈리아의 토르 데 지앙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 우승과 실패를 겪어온 체험기를 책에서 생생하게 들려주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인 ‘트레일 러닝의 맥’에서 필요한 마음가짐, 심리적 두려움 극복법, 호흡법, 기본 자세, 각종 장비, 구간별 영양 보충제 등 수많은 실천에서 쌓아온 정보를 알기 쉽게 정리해 놓았다.
34년째 현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오늘도 휴일과 휴가를 이용해 지구촌 곳곳을 누비고 있는 그의 블로그 제목은 ‘거제 촌놈’이다.
“거제 촌놈이란 별명이 좋아요. 대회 때마다 빠졌다가 새로 돋는 발톱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담고 있으니까요.”
‘한계는 내가 정한다. 촌놈에게는 한계란 없다. 이미 이뤄진 크고 비밀한 꿈을 찾아서~달린다(go).’ 그의 좌우명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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