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관측, 많은 부분이 기계·자동화됐지만 첫눈·벚꽃 개화 등 판단은 여전히 인간 영역"
[경향신문]
여기 눈 와야 ‘서울 공식 첫눈’
온몸으로 날씨 살펴야 하기에
업무공간 창문 365일 안 닫아
관측요원 1시간마다 육안 기록
매일 관찰하니 기후변화 절감
지난 10일 서울에서 올해 ‘첫눈’이 공식 관측됐다. 이른 아침 워낙 약하게 내린 탓에 실제 눈을 본 시민들이 많진 않았지만, 서울 첫눈 관측지인 종로구 송월동 기상관측소에서 ‘약하게 내리는 눈을 관측했다’는 발표를 내놨다. 이곳에서 기록하는 것은 첫눈만이 아니다. 서울의 첫서리, 첫얼음, 벚꽃 개화 시기 등을 확정하는 곳도 이곳이다. 이는 모두 사람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데이터다. 무인 기상관측소가 늘어나고 기온·기압·강수량 등의 관측은 대부분 기계화·자동화됐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관측하는 사람’이 필요한 셈이다. 서울기상관측소에서는 낮 2명, 밤 1명의 기상관측요원이 365일 ‘눈으로 살핀’ 기상정보를 기록한다. 이렇게 쌓인 하루하루의 기상정보가 30년치 모이면 ‘평년값’이 되고, 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서울 아침 기온이 3.7도로 쌀쌀한 날씨를 보인 지난 25일 송월동 사무실에서 만난 홍미란 서울기상관측소 소장은 찬 바람이 드는데도 창문을 열어둔 채 일하고 있었다. 홍 소장은 “이 창문은 365일 닫지 않는다”며 “창문을 통해 비가 오는지, 뻐꾸기 소리가 들리는지, 매미 소리가 들리는지, 첫눈이 오는지 살핀다”고 말했다. 그는 “계절 관측을 하다보면 기후가 이렇게 변하고 있구나 체감한다”고 했다.
기상관측요원들은 매 순간 관측값을 모니터링하고, 매시 50분이 되면 바깥으로 나가 눈으로 관측을 한다. 홍 소장은 “비, 눈, 서리, 얼음, 안개, 황사 이런 것들은 다 눈으로 관측을 한다”며 “저는 매일 출근하면 기상관측 장비에 문제는 없는지 파악하고, 관측목을 쭉 훑어보면서 나무 상태가 괜찮은지, 조치가 필요한지 등을 살펴본다”고 했다.
무인 관측소가 늘어나는 시대에 유인 관측소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인 관측소에서 기온·기압 등을 계측하지만, 눈으로 관측해야 하는 것들은 하나도 관측할 수가 없다”고 홍 소장은 말했다. 꽃이 언제 피는지, 단풍이 언제 시작되는지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홍 소장은 “단풍 시작은 나무 전체의 20%가 단풍이 들었을 때는 얘기한다. 그래서 옥상에 올라가 나무를 보고, 이 정도면 20%가 맞을지 관측자들과 상의하고, 사진도 공유하며 신중하게 결정한다”고 했다. 꽃이 여러 송이 피는 나무의 경우, 가지 하나에 꽃이 세 송이 이상 활짝 피면 개화로 본다. 황사도 눈으로 관측하는데, 잘 보이지 않을 때는 흙냄새가 나는지로 판단하기도 한다. 세계기상기구(WMO)로 공유되는 자료도 관측자 목측(눈으로 관찰하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관측 업무가 평시보다 많아질 때는 ‘첫 현상’이 있을 즈음이다. 첫눈은 송월동 관측요원들 눈에 보이면 적설량에 관계없이 ‘첫눈’으로 기록된다. 특히 첫눈은 사람들 관심이 많아 긴장도도 높아진다. 홍 소장은 “가끔은 눈을 보고 있으면서도 계속 (기자들이) 물어보니까 ‘진짜 맞나?’ 헷갈리기도 한다”며 “내 관측에 대해 확신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사진·동영상 등 기록으로 남겨 공유하며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벚꽃이 필 즈음도 바빠지는 때다. 홍 소장은 “(관측목을) 눈으로 매일 보는데, 납작한 꽃봉오리가 점점 통통해지면 조만간 필 것 같아 신경을 많이 쓴다. 햇빛을 받으면 순식간에 확 피기도 한다”며 “여의도(윤중로) 벚꽃 개화 시기도 기록하는데, 보통 관측소 공식 기록보다 하루이틀 늦게 핀다. 여기서 벚꽃이 피면 바로 여의도로 달려가 상태를 보면서 언제쯤 개화할지 감을 잡는다”고 했다.
매일 자연을 관찰하는 만큼 기후변화를 체감하며 지낸다고 한다. 올해 벚꽃은 100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고, 반대로 북한산 단풍은 평년보다 늦게 시작됐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홍 소장은 “이곳의 관측 자료는 기후변화의 추이를 보기 위해 사용된다. 저희가 관측을 멈추면 날씨 예보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정확한 관측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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