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소차도 못 만들 건 없지, 주문만 있으면

광주 | 고영득 기자 2021. 11. 28. 21:4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광주 빛그린산단 가보니
시간당 28대의 ‘캐스퍼’ 조립…연간 10만대 생산

광주글로벌모터스 매니저들이 캐스퍼에 부품을 장착하고 있다. 캐스퍼는 지난 9월15일부터 생산되기 시작했다. 한국자동차기자협회 제공
차체 용접 등에 로봇 156대 활약
직원 539명의 절반가량이 20대
친환경·자율주행 연구 시설 갖춰
부품 개발부터 평가·인증 등 가능

‘상생의 일터’라고 적힌 정문 앞 대형 표지석이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전국 최초의 노사 상생형 일자리 기업임을 알렸다. 건물 외벽과 공장 내부, 심지어 구내식당에도 ‘상생’과 ‘최고 품질’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광주 광산구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GGM과 선도기술지원센터, 친환경자동차 부품인증센터를 최근 찾았다. 저마다 지역 일자리 창출, 미래차 기술 개발·지원, 전기차 안전성 검증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GGM도 전기차 생산 능력을 보유한 터라 자동차 전용 산단인 광주 빛그린산단은 친환경·자율주행차 분야의 메카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선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할 ‘동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렸다.

■ 자동화 시스템에 젊은 GGM

광주 광산구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자리한 광주글로벌모터스 정문에 ‘상생의 일터’라고 적힌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고영득 기자

빛그린산단에 연면적 10만9194㎡(약 3만3000평) 규모로 들어선 GGM은 국내에서 23년 만에 설립된 자동차 생산 공장이다. 자체적으로 완성차를 만들지 않는 위탁 생산 전문업체다. 지난 9월15일 양산한 현대차의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가 첫 작품이다.

이날 방문한 차체공장과 조립공장은 주문이 몰린 캐스퍼 출고에 여념이 없었다. 차량의 뼈대를 만드는 차체공장 한쪽에선 용접 작업이 한창이었다. 불꽃을 튀기며 용접하는 이들은 모두 로봇이었다. GGM이 운영하는 로봇 156대 중 차체공장에서 활약하는 로봇은 118대로, 이 가운데 69대가 용접에 투입된다. 차체는 리프트를 통해 도장·조립공장으로 자동 운반된다. 사람이 지게차로 무거운 장비와 부품을 운반했던 작업도 이곳에선 무인운송로봇(AGV)이 대신했다. 앞에 사람이 지나가면 즉각 멈춰섰다.

GGM에선 연간 10만대의 차량을 생산할 수 있다. 시간당 28대의 캐스퍼가 조립되고 있었다. 작업자들은 ‘매니저’로 불렸다. 부품을 끼우고 조이면서 캐스퍼를 완성시켜가는 매니저들의 얼굴에서 힘들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차체 받침대는 매니저의 키에 맞춰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됐다. 허리 부상을 막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이날 공장 안팎에서 만난 직원들이 하나같이 젊어보인 게 인상적이었다. GGM은 539명을 채용했는데 이 중 광주·전남 지역 출신이 498명으로 92%를 차지하며, 20대가 절반가량인 275명에 달한다. 공장을 안내한 김영권 생산본부장은 “평균 연령이 28.3세”라고 전했다. 대부분 올해 3~5월 입사했다. 김 본부장은 “5~6개월간 전문 교육을 이수하고 ‘레벨 2’ 인증을 받아 현장에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레벨 2는 제한된 시간 안에 본인이 맡은 일을 끝내고 다음 공정으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다. 김 본부장은 “한 곳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고 다른 공정까지 맡아보게 해서 ‘내 손으로 차 한 대를 만들어봤다’는 자부심이 들게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GGM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직원들 연봉은 일반 완성차 업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적정 임금,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등 ‘상생 원칙’에 따른 것이다. 수익이 나면 성과급으로 부족한 실질소득을 보전해주기로 돼 있다. 임직원들이 캐스퍼가 계속 순항하고 다른 차종을 추가 수주하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구체적인 성과급 지급 방식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GGM은 아직 전기차 생산 계획이 없다.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광식 GGM 부사장은 “현재 라인을 변경하지 않고도 전기·수소차까지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며 “전기차 시장이 더욱 활기를 띠면 GGM에 생산을 맡기는 국내외 업체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 최대 규모 자율주행 전자파 평가실

자율주행차의 외부 전자파 영향을 측정하는 광주그린카진흥원 선도기술지원센터 내 전자기적합성 평가실. 고영득 기자

GGM의 최대 주주는 지분 21%를 보유한 광주그린카진흥원이다. 광주시 출연기관인 진흥원은 친환경차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친환경차 부품 클러스터’를 구축 중이다. 국비 843억원을 포함해 2056억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이날 방문한 선도기술지원센터는 내년 말 공식 가동을 앞둔 클러스터의 핵심 시설이다. 총 181종의 장비를 구축해 친환경차 부품 개발부터 제품 평가, 인증까지 가능한 곳이다. 각종 인증 장비를 활용하면 친환경·자율주행차 관련 후발업체와 스타트업의 연구·개발비를 줄일 수 있다.

센터 내 시설 가운데 전자기적합성(EMC) 평가실이 눈길을 끌었다. 차량에 탑재된 전자 부품이 외부 전자파 영향을 어느 정도 받는지 검증하는 곳이다. 20m 길이의 굴절버스도 들어올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넓었다. 송경석 장비운영팀장은 “국내 최대 규모의 EMC 평가실”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는 편한 이동수단이지만 외부 전자파로 인한 소프트웨어 오작동은 운전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파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곳에선 자율주행차의 외부 전자파 영향을 측정할 수 있는 안테나 장비가 천장에 연결돼 있었다. 기존 설비의 경우 장비를 바닥에 세워놓는 방식이어서 라이다 등 센서를 앞에 장착한 자율주행차가 주행하다 안테나를 장애물로 인식하고 급제동해버리는 게 단점이었다. 그러나 이곳 평가실의 ‘행잉’ 방식은 주행 중에 위쪽에서 전자파를 쏘고 차에서 나오는 전자파도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설비는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송 팀장은 전했다.

자율주행 플랫폼 테스트를 위한 고성능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도 눈에 띄었다. 올라타면 실제 차량을 모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눈·비 때문에 도로가 미끄러워지거나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 등 다양한 주행 환경을 재현해 자율주행 관련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밖에 선도기술지원센터는 시제품 생산을 위한 대형 3D 프린터, 극한의 추위와 고온에서 차량 성능을 시험할 수 있는 실차 환경 챔버, 친환경차의 내구성을 검증하는 부품환경평가실 등을 갖췄다.

■ 배터리 안전 검증에 인력 태부족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친환경차 부품인증센터 배터리실험동에서 배터리 압착 테스트가 진행되고 있다. 고영득 기자

전기차를 모는 운전자라면 가장 걱정되는 게 배터리 화재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쉽게 꺼지지 않아 위험을 키운다. 선도기술지원센터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의 친환경차 부품인증센터는 배터리로 구동하는 차량의 안전성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관이다. 배터리시험동, 충돌시험동, 충격시험동으로 구성됐고 센터 완공은 내년 말로 예정돼 있다. 배터리시험동은 이르면 다음달 가동한다.

배터리시험동에선 과열, 낙하, 압착, 충격, 침수 실험 등이 진행된다. 국제 기준상 10개 항목보다 강화한 12개 항목을 평가해 결함을 분석한다. 이날 자동차안전연구원 측은 차량용 배터리가 시속 45㎞ 속도로 달리다 충돌하게 하고, 고강도로 배터리를 압착하는 시험을 보여줬다.

충돌과 압착 순간 배터리에 곧바로 불이 붙는 건 아니다. 이에 연구원들은 시험 뒤 약 1시간 동안 배터리 상태를 지켜본다.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불이 나면 방전될 때까지 불이 꺼지지 않기 때문에 시험 자체도 위험하다. 이에 배터리시험동의 8개 실험실 중 4곳은 콘크리트벽과 철문 두께가 30㎝를 넘는 방폭 구조로 지어졌다.

침수시험실에서는 배터리를 바닷물 평균 염도(3.5%)의 염수에 1시간 동안 담가 발화 여부를 확인한다. 배터리를 높이 4.9m에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낙하시험실은 다리 등에서 차량이 추락했을 때 배터리의 안전성을 파악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년 하반기에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화재시험실이 들어서 전기차와 버스 단위의 실차 화재 시험을 수행한다. 내년에 차량 충돌시험동, 충격시험동까지 갖추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차 안전성 인증기관이 될 것으로 자동차안전연구원은 기대했다.

그러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센터장은 없고, 배터리실험동에는 연구원 2명만 상주한다. 이정기 자동차안전연구원 평가연구실장은 “배터리실험동에만 20명이 있어야 수요에 맞춘 시험과 인증이 가능하다”며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광주 |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