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놓인 삶..김주영 '객주'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으로 선정한 소설을 소개해 드리는 시간, 오늘(28일)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만나보겠습니다.
조선 시대 가장 천대받았던 이름 없는 상인, 보부상들의 삶을 다룬 소설인데요,
1980년대 신문 연재부터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만화와 드라마로도 만들어지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유동엽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누군가 내딛는 발걸음.
그 걸음이 반복된 곳에 길이 생겨납니다.
두 발이 곧 교통수단이던 시절. 어느 산기슭이든 그렇게 길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객주' 중에서 : "사내는 부지런히 길을 줄이다가 문득 개천으로 내려가는 자드락길로 바꾸어 잡았다."]
[김주영/소설가 : "가장 빠른 길 그걸 지름길이라고 하잖아요. 지름길일수록 이런 자드락길이 많았죠. 자드락길도 사실은 보부상들이 많이 쓰던 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많이 쓰던 말이에요."]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산길을 넘나들며 물건을 팔았던 상인들이 소설의 주인공.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몸에 지니고 다녔던 보부상에게 작가는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김주영/소설가 : "고통 같은 것, 또 외로움 같은 것, 다 이 가슴속에 묻고 또 지고 다녔죠. 가만 생각해보면 작가도 그런 거 아니냐."]
어떤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름 없는 보부상들의 일상은 마침내 대하소설이 됐습니다.
[김주영/소설가 : "역사의 행간에서 그대로 배설돼버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열 권의 소설이 완성되었다. 역사소설로서는 성과가 아니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죠. 잘 썼다, 못 썼다 그것보다도..."]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의리와 배신, 복수와 치정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면서도, 19세기 풍경을 되살리기 위해 작가는 전국의 장터를 돌며 보부상의 흔적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김주영/소설가/1995년 인터뷰 : "이 소설에 나오는 육담은 바로 그러한 계층의 사람들이 흔히 쓸 수 있는 말을 찾아서 씀으로 해서 소설의 현장감을 높여준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잊혀가던 생생한 우리말들은 작가의 취재노트에 담겨 다시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김주영/소설가 : "맷고기. 맷고기는 썰어서 파는 고기를 맷고기라고 하는거죠. 요새는 사라진 말이죠. 맷고기를 누가 알겠어요?"]
[하응백/문학평론가 : "우리말의 아름다움, 고아함, 이런 것을 잘 살려서 품격을 잃지 않는 소설이다. 그러니까 우리말의 사전 같은 구실도 하는 그런 소설입니다."]
등단 50년, 수십 편의 소설로 수많은 독자를 만나온 소설가.
['객주' 중에서 : "걷고 또 걸어도 문득 고개를 들면 그는 길바닥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하였다."]
평생 걸어온 길에서 소설의 주인공처럼 느끼는 외로움은, 82살의 작가를 다시 새로운 창작으로 이끄는 힘이기도 합니다.
[김주영/소설가 : "재주라고는 글 쓰는 일뿐이니까. 거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도 성취감은 잠시, 외로움에 빠지고. 운명 같아요."]
KBS 뉴스 유동엽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박세준/장소협조:경북 청송 객주문학관/그래픽:기연지
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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