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D-100,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과 청년의 답 찾아야
[경향신문]
29일로 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의석수를 따라 기호 1번(더불어민주당)이 될 이재명 전 경기지사, 2번(국민의힘) 윤석열 전 검찰총장, 3번(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 4번(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본선 무대에 올랐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도 출사표를 던졌다. 앞으로 대한민국 5년을 이끌 새 대통령이 이 중에서 나올 것이다.
이번 대선은 처음으로 국회의원 경력이 없는 여야 주자들이 선두를 다투고 있다. 제3지대 후보 간 연대의 몸짓도 시작됐다. 대선은 대한민국의 길을 가른다. 시민의 일상생활에도 깊숙이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선거 100일 전 대세는 없다. 경선 컨벤션 효과가 끝난 거대 양당 주자들은 접전 중이고, 부동층은 어느 대선 때보다 많다. 정치도 시대정신도 선거도 변화와 반전이 많은 격전이 될 것임을 예고한다.
대전환기다. 이 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는 “이 위기를 자초하고 겪고 있으면서 코로나 이전 세계로 돌아갈 날을 꿈꾼다는 사실에 분노한다”(<생명경제로의 전환>)고 했다. 코로나19 발발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가서도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 대선을 치르는 대한민국도 그 소용돌이 가운데에 서 있다.
아직도 끝을 모를 팬데믹은 보건·백신·바이오·공공의료의 중요성을 환기했다.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코로나19는 불평등을 키웠다. 소득·자산과 일자리는 양극화되고, 사회안전망은 헐거워졌으며,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교육이 됐다. 23년 전 외환위기 속에서 국가와 기업만 빠져나오고 시민은 피와 눈물을 흘린 흑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기후위기는 에너지 전환의 숙제를 안겼다. 세계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내로 제어하자는 파리협약을 맺었다. 현재 80%를 상회하는 화석에너지 비율을 2040년까지 25% 정도로 줄여야 이룰 수 있는 목표다. 2023년 유럽부터 시작되는 탄소국경세는 ‘기후가 경제와 밥’이 될 것임을 공증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엔 올 3분기 합계출산율 0.82명까지 떨어진 인구위기, 수도권·비수도권 사이에 ‘분단’이란 말까지 나오는 지방소멸 위기가 더해져 있다.
미·중의 패권 전쟁도 안갯속이다. 양국은 글래스고 COP26 회의에서 가까스로 기후 협력을 약속했지만, 정상회담에선 갈등을 키우지 말자는 원칙만 주고받았다. 미·중이 움직이면 ‘G2’가 되고, 합의 없이 싸우면 무엇도 결정되지 않는 ‘G0(제로)’ 시대가 된 것이다. 두 나라는 한반도 평화의 변속 키도 쥐고 있다. 미·영·호주의 안보 동맹이 호주·중국 간 석탄 거래를 끊고, 중국의 에너지 부족이 한국의 ‘요소수 사태’를 부른 것은 공급망(식량·자원·부품) 회오리가 빈발할 수 있음을 예감케 한다. 안팎으로 유례없는 대전환기, 대한민국은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기로에 섰다. 대선은 국가의 역할과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대선 속엔 시대정신이 흐른다. 2012년엔 경제민주화·복지가 부각됐고, 2017년엔 적폐 청산과 비정규직이 화두가 됐다. 하나같이 한국 사회의 응축된 모순이었고, 그 출구를 찾고자 하는 의제였다. 지금 시대정신은 ‘부모보다 못사는 첫 세대’로 전락한 청년일 수밖에 없다. 얼마 전 한국노동패널 논문집에 일하지 않고 학교도 다니지 않는 15~34세의 ‘니트족 청년’이 지난해 172만명을 넘었다는 통계가 실렸다. 니트족이 두 자릿수(10.5%)가 된 것도 처음이다. 이 추세는 더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외환위기가 덮친 1998~1999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청년은 지금까지도 평균 취업률이 27.5%에 그쳤다. 외환위기 때 이상으로 코로나 시대 청년의 삶이 팍팍하고, 그 위기가 장기화·구조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청년은 대선 승부처이기도 하다. 여론조사에서 MZ세대(18~34세) 40~50%가 지지 후보가 없다고 답하고,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부동층은 60%를 넘는다. 여야 주자들은 이들 스윙보터를 잡기 위해 온갖 전략과 정책을 내놓고 있다. 표만 노린 구애나 표밭에서 소비되는 청년이 되어선 안 된다. 이 시대 약자인 청년 문제의 답을 찾는 대선이 돼야 한다.
시민들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고 혀를 찬다. 여야 모두 비전·정책보다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경선을 치른 탓이다. 수사당국이 이재명 후보의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과 윤석열 후보의 검찰총장 시절 고발 사주 및 처가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이다. 실체적 진실과 책임 규명은 사법당국에 맡기고, 대선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부동산·일자리·양극화·성장동력·기후위기 문제를 푸는 정책 설계 방향이 맞고 구체적인지, 예산 추계는 제대로 뒷받침되는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누가 더 진솔한 자세로 세대·빈부·젠더·노사·지역 갈등이 키운 위기를 헤쳐나갈지 주목해야 한다. 대선은 그런 백년대계 리더십을 경쟁하는 시간이며, 그 마지막 선택과 책임은 유권자의 몫이다.
100일은 긴 시간이다. 또 어떤 격랑이 일지 모른다. 선거는 민주주의 꽃이다. 세상의 온갖 문제와 민생의 답을 찾고, 소통하며, 새 리더십을 세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선거가 대선이다. 대한민국의 과거·현재·미래에 대해 더 많이 논쟁하고, 대안이 봇물처럼 나오고, 희망과 미래를 찾는 100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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