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일본인의 자기인식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인간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렵다. 하물며 자신이 속한 나라나 사회를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국가와 사회는 너무 커서 실감이 나지 않는다. 또 오랫동안 익숙해진 공동체에 대해 부정적인 정보를 보고 듣는 것을 꺼린다는 편향도 인간에게 많든 적든 존재한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따른 인구 10만명당 사망자 수를 비교하면 일본은 145명으로 중국(3.2명), 한국(63.9명), 대만(35.3명)을 훨씬 웃도는 등 동아시아 국가 중 최악의 숫자(이달 20일 존스홉킨스대학 조사 기준)다. 정부가 유능한지 어떤지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정치나 사회의 구조가 순조롭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교육학자인 혼다 유키 도쿄대학교 교수가 최근 발간한 <일본은 어떤 나라?>(지쿠마쇼보)라는 꽤 흥미로운 책을 봤다. 이 책은 고등학생, 대학생을 독자로 상정해 가족의 구조,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관계, 학교 교육, 인간관계, 경제, 정치 등 여러 분야의 풍부한 데이터를 근거로 현대 일본의 특징을 다른 나라와 비교한 내용을 담았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생활 지원에 대해 가족의 역할이 여전히 중시되고, 가족관계에서 사회적 책임도 적다. 또 남녀 역할 분담 의식이 강하게 남아 있고, 여성의 사회적 참여는 확대됐지만 가사 부담은 여성에게 편중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는 대규모 학급에서 어떻게 보면 효율적인 기초학력 육성 교육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이들은 시험불안을 강하게 느끼는 반면, 공부를 하는 데는 동기부여가 약하다는 특징이 있다.
어른들에게 평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성장하고 진보하기 위해 배우려는 의욕은 그다지 크지 않다. 인간관계는 일반적으로 희박하고, 가족 이외 친구가 없는 사람의 비율이 선진국 중에 일본이 가장 높다. 경제에 관해서는 장시간 노동이 계속되고 경쟁력의 순위는 내려가고 있다. 정치는 선거 투표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정치 자체에 큰 역할을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정치 참여 의욕이 극히 저조하다. 이 점은 한국과 상당한 대조를 이룬다. 개인적 생활에서는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자신이 갖고 있는 장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의 비율도 낮다.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애착이나 자부심은 갖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끝난 뒤 경기 침체, 인구 감소가 진행되면서 구매력평가지수(PPP)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한국에도 뒤처졌다. 혼다 교수의 저서는 과거 경제 발전이나 기술 대국을 만든 일본의 구조가 지금은 역으로 자유롭게 살면서 일하고 싶은 개인을 묶어두는 쇠사슬이 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이런 이유로 고용, 가족,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급히 정책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10월31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여당인 자민당은 261석을 획득해 의석수가 조금 줄긴 했지만 단독 과반으로 안정 다수를 유지했다. 국민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줬다.
물론 야당 쪽이 매력적이고 신뢰할 만한 정책 구상을 내놓지 못한 것도 원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사회의 변혁을 위해 꼭 필요한 현상에 대한 지적, 즉 제도나 정책이 어느 부분에서 잘못되고 있는지 논의를 하려고 하면 ‘야당은 대안 없이 비판만 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다.
위기나 재난이 닥쳤을 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자신은 괜찮을 것이라며 신변의 안전을 확보하지 않는 심리적 기제를 ‘정상성 바이어스’(Normalcy bias)라고 부른다. 지금 일본에서는 국민 전반에 ‘정상성 바이어스’가 만연해 있는 듯 하다. 다소 불쾌한 측면이 있더라도 이런 사실을 마주하지 않으면 일본의 몰락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대선후보 적합도…윤석열 36.1% 이재명 34.4%
- 민주당, 이재명 ‘조카 교제 살인 변호’ 쟁점화에 바짝 긴장
- [Q&A] 오미크론 변이, 기존 백신 효과 얼마나 있나요?
- 오미크론 변이, 최악 상황에 등장…“백신 불평등 탓”
- 누가 대통령 돼도 ‘대권’은 없다
- BTS 상징 보랏빛 물든 LA 공연장…전세계 아미들 “보라해”
- 리투아니아 ‘대만 대표처’ 허용에 중 관영매체 “환상에 빠져 있어”
- 위중증·사망 또 최다…중환자 병상 가동률 첫 75% 넘었다
- 이순자 ‘15초 사과’에 5·18단체 “국민 기만하냐” 분노
- 이재명, ‘간병살인’ 청년에 편지 “재난적 의료비 5천만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