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공해상 어업 금지론
[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실비아 얼이 누구인가? 평생을 바다 연구에 헌신한 전설적인 해양학자, 7000시간 이상의 잠수 기록 보유자, 전 미국 해양대기국 수석과학자, <타임>지가 최초로 선정한 ‘지구 영웅’으로 전세계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가 지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폭탄’을 터뜨렸다. “공해상 원양 어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러한 발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전세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행사였기에 여파가 더욱 컸다.
이 주장의 근거는 무엇인가? 현재 기후변화 대응은 육지 관련 정책에 경도되어 정작 중요한 해양보호 대책은 미흡한 실정이다. 대기 균형과 산소 공급에 결정적인 식물성플랑크톤이 1950년 이래 40%나 감소했고,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해양 어족의 3분의 1 이상이 남획되고 있고, 아슬아슬한 한계치까지 어획되는 어족을 포함하면 90%에 이른다(원양 산업의 경우, 중국·대만이 60%, 한국·일본·스페인이 각각 10%씩 차지하는 5개국 독식 체제다). 해결책은? 전 인류가 건강한 바다에 의존한다는 사실에 부응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바다를 살리는 생물들을 죽이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지상 최대의 용인된 야생동물 거래인 수산업을, 최소한 공해상에서라도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는 것이다. 기후위기를 극복할 때까지만이라도. 여기다 미래 세대를 위한 해양보호구역(MPA)을 2030년까지 30%로 확대하는 것이다. 들여다보면 급진적이긴커녕 지극히 논리적인 주장이요, 학자로서 최전선에서 생태계 파괴를 직접 경험하며 체득한 진실을 알린 용기 있는 발언이다. 실비아 얼이 해양생태계의 최고 권위자 중 한명이라면, 수산 ‘자원 전문가’만 즐비한 우리 현실에선 당연히 일축될 의견이라 예상한다. 산업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바다 생물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생태계의 일원으로 보는 시선의 오랜 부재 때문에, 우리의 해양 정책은 수산업 진흥 정책과 동일시되어왔다.
바다를 둘러싼 이 현격한 시차가 드러나는 이슈가 또 있다. 바로 수산보조금이다. 식량안보를 명분으로 수산업에 지급되어온 보조금은, 2018년 기준으로 약 80% 이상이 대형 선박과 중장비를 동원하는 대규모 기업형 어업에 집중되면서 과도한 어획, 서식처 파괴, 바다(업계는 ‘수산 자원’이라고 부름)의 고갈을 불러왔다. 이런 지원을 “유해 보조금”으로 분류하는 관점이 학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받아들여져 20년 이상 논의 중이다. 바로 내일(30일) 열리기로 했다가 변이 바이러스로 잠시 연기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조만간 유해 보조금 폐지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며, 설혹 이번에 타결이 안 되더라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을 통해 근미래에 보조금이 규제·폐지되는 건 시간문제로 보인다.
한국은 이 조류에 둔감했다. 정부는 정보 공유에, 업계는 자발적 쇄신에 소홀했다. 아직까지 유해 보조금이란 개념조차 인정을 안 하는 수준이다. 보조금 폐지로 인한 영세 어민과 선원 노동자의 피해를 정말로 걱정한다면, 필요할 때만 그들을 대변하는 척할 게 아니라, 임박한 현실을 솔직히 소통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국제 흐름을 따라잡는 데 급급한 것도 능사는 아니다. 선도를 해야 한다. 정상적인 협상 테이블이라면 “수산보조금 폐지냐, 아니냐”가 아니라 “공해상 어업 금지냐, 수산보조금 폐지냐”라는 두 카드를 놓고 논의가 돼야 한다. 그것이 지금의 바다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 이런 상식조차 급진으로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해양생태계 전체를 돈벌이 수단이 아닌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 동반자로 보는 인식의 절대 부족이다. 그래서 더더욱 “영혼 있는 전문가”의 목소리 하나가 아쉽다. 실비아 얼 같은 잠수 경력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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