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의 어떤 시] [47] 본보기 (The Example)

최영미 시인·이미출판 대표 2021. 11. 2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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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나비가 보여주는

하나의 본보기가 있다;

거칠고 단단한 바위 위에

행복하게 누운,

달콤하지 않은 돌덩이 위에

친구도 없이 저 혼자 행복한 나비.

이제 내 침대가 딱딱하더라도

아무 걱정 하지 않을 거야;

작은 나비처럼

나는 나의 즐거움을 만들어야지.

그 행복한 마음이

바위도 꽃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한 마리 작은 나비처럼.

-윌리엄 데이비스 (W. H. Davies·1871∼1940)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이 시를 생각해야겠다. 영어로 읽으면 간단명료하게 머리에 쏙 들어오는데 우리말로 옮기자니 어렵다. “여기 거칠고 단단한 바위 위에 행복하게 누운 나비를 봐라”로 의역하려다 참았다. 바위 위에 앉아 뒤척이지도 않고 편안해 보이는 나비, 친구도 없이 혼자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을 부러워한 시인. 꽃이 없는 바위 위에 앉은 나비는 행복했을까.

나비 본 지 오래되었다. 나비를 보며 이렇게 귀엽고 기특한 시를 쓴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는 한때 부랑아 노숙자였다고 한다. 모르긴 몰라도 없는 걱정을 만들어 하지는 않았을 터. 불면은 문명의 병.

학창 시절, 책 읽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밤을 꼴딱 새우는 버릇이 들었다. 삼십대가 지나 불면이 사라졌고 최후진술을 앞둔 밤에도 판결기일에도 그럭저럭 잤는데, 출판사 대표가 된 뒤 불면증이 도졌다. 책을 읽지도 쓰지도 않고, 책을 만들지도 팔지도 않아야 잠이 잘 오려나.

***

The Example (시 원문)

Here’s an example from

A Butterfly;

That on a rough, hard rock

Happy can lie;

Friendless and all alone

On this unsweetened stone.

Now let my bed be hard

No care take I;

I’ll make my joy like this

Small Butterfly;

Whose happy heart has power

To make a stone a flower.

-William Henry Davies (1871∼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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