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건 많아도 '시대정신' 없는 대선..왜? [대선 D-100]
[경향신문]
20대 대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전 대선에 비해 화두가 될 만한 ‘시대정신’은 흐릿하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경제 민주화’, 2017년 19대 대선 때 ‘적폐 청산’이 부각됐던 것과 대비된다. 주요 대선 후보들은 ‘전환적 공정성장’ ‘공정과 상식’ ‘반(反)기득권’ ‘시대교체’ 등을 의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축적된 모순을 톺아내고 해법을 제시하는 화두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좌·우 양극화를 비롯한 정치·사회적 변화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 탓에 후보들의 슬로건이 시대정신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진단하면서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양극화 문제부터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18대 대선이 열린 2012년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이 ‘경제민주화’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정치권의 화두가 됐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원·하청 간의 갑·을관계 및 민생문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던 시점에 보수진영이 진보적 의제를 선점해 파급력은 더 컸다. 대선 후보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할 의지가 있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2017년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직후 열린 19대 대선에서는 탄핵 정국 내내 제기됐던 ‘적폐 청산’이 최고 화두였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공약으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대선 직후인 5월10~11일 한국갤럽이 투표자 1008명에게 조사한 ‘문 대통령에게 투표한 이유’ 중 응답률이 가장 높은 것이 ‘적페청산·개혁·쇄신’(20%)이었다.
차기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전환한 뒤 코로나19 위중증 환자가 크게 늘었지만, 물리적(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제한 탓에 피해를 본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감안한 방역조치가 필요하다. 기후위기가 현실화되면서 탄소 배출량 감축 실행도 시급한 목표가 됐다. 수도권 집값이 크게 올라 ‘내 집 마련’ 꿈을 잃은 서민들의 분노가 커졌다. 이에 따른 자산 격차, 취업 문제는 공정사회에 대한 갈망, 젠더 갈등으로도 이어졌다.
각 대선 후보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각자 생각하는 시대정신을 슬로건으로 만들어 내놓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경선 때 1호 공약으로 ‘전환적 공정성장’을 내놓았고, 당 선거대책위원회 이름을 ‘대한민국 대전환 선대위’로 지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 5일 당 대선 후보 선출 때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 대해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렸다’고 정의하면서, 선대위 인선도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분들을 모시겠다”고 말했다.
‘제3지대’에 서 있는 대선 후보들은 거대 양당을 ‘기득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지난 23일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양당정치 종식 그 자체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했다. “주4일제는 시대정신”이라고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시대교체”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의 대표 슬로건은 “기득권 공화국을 기회 공화국으로”다.
그러나 지난 두 차례의 대선처럼 사회 전체의 이슈가 될 만한 슬로건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최근 대선에서 부각된 ‘경제 민주화’나 ‘적폐 청산’이 국민들에게 ‘말의 성찬’처럼 다가오면서 시대 정신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번 대선은 양당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제3지대발 의제에 관심도는 떨어지고 있다”면서도 “민주당·국민의힘이 선대위를 본격 가동하다보면 대선의 의제가 하나로 모아질 가능성은 있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양극화 해소’를 의제화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경제적 계층뿐 아니라 정치 성향, 세대, 성별에 따라 입장이 갈린 채 대립하는 현상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내 정치 세력이 양극화됐고 양당도 양극화된 집단과 상대 진영에 대한 반감에만 기대면서 ‘양극화’가 의제화되지 못했다”며 “모든 후보가 정치·경제 양극화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승민 기자 m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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