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살인 멈춰라"..하나의 구호로 연결된 전세계 여성들

박고은 2021. 11. 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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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전세계의 여성 대상 폭력
스페인·터키·멕시코 등서 시위
"코로나19 뒤 여성 2명 중 1명은 폭력 경험"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인 25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여성 인권 강화를 요구하는 거리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마드리드/로이터 연합뉴스

“한 명의 여성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되어서는 안 된다!”

지난 25일(현지시각)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여성들이 외쳤다. 이들의 외침은 최근 국내에서 잇달아 일어난 교제살인, 스토킹 살인 등 페미사이드(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를 비롯한 젠더폭력이 세계 여성 모두의 일이란 걸 보여준다.

국내에서는 지난 1∼2주 사이 남성 가해자가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에서 한 30대 남성이 함께 살던 여성을 흉기로 수차례 찌르고 19층에서 밖으로 떨어뜨렸다. 살해 이유는 ‘이별을 통보받아서’였다. 19일 서울 중구에서는 한 여성이 스토킹 범죄에 시달리다 살해당했다. 피해자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중이었지만, 흉기를 든 가해자를 막지 못했다.

드문 일이 아니다. 지난 8월에도 여성이 피해자인 살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의붓아버지에 의한 영아 살해, 남자친구에 의한 20대 여성 살해, 성범죄자에 의한 중년 여성 연쇄 살해, 10대 손자들에 의한 할머니 살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의 가해자들은 피해자와 의붓아버지·애인·지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거나 안면이 있는 남성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이 97건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살인미수는 131건. 1.6일마다 여성 1명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될 뻔했던 셈이다.

25일(현지시간) 볼리비아 라파스 대성당에서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 기념 미사가 열리는 가운데 제단 위에 폭력에 여성 피해자들의 사진이 놓여 있다. 라파스/AP 연합뉴스

페미사이드는 전세계 여성에게 닥친 현실이다. 25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은 스페인·이탈리아·프랑스·콜롬비아·터키·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린 여성들의 시위 소식을 전했다. 스페인 전역에는 수천명의 여성이 여성 운동의 상징인 보라색 깃발을 든 채 거리를 행진했다. 정부 쪽 추산으로 마드리드에서만 1200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여성폭력에 대한 해결책을 촉구했다. 올해 스페인에서는 37명의 여성이 파트너나 전 파트너에게 살해당했고, 정부가 집계를 시작한 2003년부터 모두 1118명의 피해자가 교제살인으로 숨졌다고 알려졌다.

터키와 멕시코에서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 유혈충돌도 있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정부의 ‘이스탄불 협약’ 재가입을 촉구하기 위해 모였다.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강경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평의회 주도로 만들어진 이스탄불 협약은 여성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권 기준을 담은 조약이다. 가입국은 성폭력, 가정폭력 등 범죄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입법·교육을 통해 성평등을 장려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터키 정부는 지난 3월 ‘성평등 가치가 전통적인 가족관을 훼손한다’며 이스탄불 협약에서 탈퇴했다. 터키에서는 올해만 345명의 여성이 가정폭력 등으로 살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에서는 집회 도중 총격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멕시코 당국은 이날 멕시코 과이마스 시청 외곽에서 가두행진이 벌어지던 중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3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희생된 2명의 남성은 칼라 코르도바 과이마스 시장의 경호원과 시청 관계자이고, 여성 한 명은 시위 참가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비시>(BBC)는 “분명히 과이마스의 여성 시장을 노린 공격”이라고 보도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시위에서는 “여성을 살해하는 멕시코! 그들은 우리를 죽이고 있다!”는 구호가 나왔다. 여성폭력 범죄가 매일 같이 발생하고 있지만, 경찰 등 정부 당국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멕시코에서 매일 적어도 10명의 여성이 살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유엔 여성기구(UN Women)는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현지시간) ‘코로나 대유행의 그늘: 코로나19 유행 동안의 여성폭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중·저소득 13개 나라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5%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신이나 주변 여성이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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