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한반도 고대 유물인데..뭘까, 이 낯선 향기는? 국립경주박물관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 특별전
[경향신문]
국립경주박물관의 ‘고대 한국의 외래계 문물-다름이 만든 다양성’ 특별전(3월30일까지)은 이례적이다. 우선 한국 여러 박물관에 흩어진 선사시대~통일신라 시기 외래계 문물을 한데 모았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외래계 문물을 집대성한 전시는 한국에서 처음이라고 했다. 국립박물관은 유물을 통해 근대민족국가의 정체성을 구축·유지하는 기능을 담당해온 제도인데, 이번 전시는 “다양한 문화와 사람이 섞이고 갈등하면서 역사에 스며들어 ‘우리’를 만들고, 점차 그 외연을 넓혀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했다”며 교류사·관계사의 관점에서 한국 문화의 혼종성을 내세운다. 전시 부제 중 하나는 ‘교류하는 인간, 호모 코무니칸스(Homo Communicans)’이다. 이 라틴어는 ‘나누는 인간’ ‘지식·정보를 주는 인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전시 기획 취지에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과의 공존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도 넣었다.
박물관은 특별전의 ‘외래계 문물’을 두고 “다양한 이질적 문화 요소들이 어우러지고, 혼재되어 나타난 고대 한국 사회를 잘 보여주는 문물”이라고 정의한다. “밖에서 들어올 당시 사람들에게는 비보편적이고 불안정적이며 낯선 것들”이었다. 이질적이고·비보편적인 요소를 갖춘 게 원성왕릉 무인상이다. 박물관은 전시장 입구에 무인상(복제본)을 세워놨다. 큼지막한 매부리코에 터번을 둘러쓴 머리의 형상은 왜 통일신라 왕의 무덤을 지키고 있었을까. 이 무인상이 “당나라의 서역인 이미지를 차용”한 것인지, “서역인의 경주 방문을 입증”하는 것인지를 두고 여러 해석·논쟁이 이어졌다. 신라와 서역 간 교류를 기록한 1차 문헌이 없기 때문이다. 이븐 크르다지바(820~912), 알 마스오디(?~965)가 각각 ‘신라국’을 기술했는데, 신라를 직접 방문한 것인지, 중국 내 아랍 상인의 전언을 옮긴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번 전시에 그러한 궁금증에 대한 정답은 없다. 다만 ‘외래계 문물’들이 역사적 상상력의 공간을 넓힌다는 점은 분명하다. 2017년 경주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터번을 쓴 토우(土偶, 흙인형)도 전시한다.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터번 토우의 복식은 당나라 때 호복(胡服)이라고 불린 소그드인의 카프탄(셔츠 모양의 긴 옷)과 비슷해 페르시아 복식의 영향을 받은 소그드인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당시 이곳에선 인신 공양 희생자로 보이는 인골 2구도 나왔다. 인골과 토우의 동시 매장도 여러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신라 금관 등을 출토한 경주 황남대총에서도 외래계 문물이 여럿 나왔다. 흑해 북안의 호흐라치무덤군 금관이나 이란 등 서역계 팔찌 제작기법과 비슷한 금팔찌(보물)가 그중 하나다. 앵무조개 잔과 야광조개 국자 등도 전시한다. 앵무조개는 사모아제도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태평양과 호주 부근 인도양에 서식한다. 박물관은 “고대 해상 실크로드라고 부르는 바닷길은 지중해-아라비아-인도-동남아시아-중국을 연결했다. 고대 한반도에서 발견된 이 유물들은 중국과 한반도, 일본 열도를 잇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해상 교통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흔적”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진나라(기원전 221~기원전 206년) 멸망 후 중국계 유민들이 대거 고조선으로 이동했다. 박물관은 이를 “한반도 사회에 철이라는 새로운 금속 문화 확산”을 일으킨 계기로 본다. 박물관은 평북 위원군 용연동에서 나온 ‘명도전’과 반달쇠칼 등 여러 철제품을 내놓았다.
박물관은 중국 유민의 유입을 두고 미국 인류학자 데이비드 W 앤서니의 ‘원거주지에서 주민이 더 머무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미는 요인)과 ‘이주 목적지가 제공하는 요인’(당기는 요인)으로 설명한다. 중국 진한 교체기 사회 혼란(미는 요인)으로 유민이 발생하고, 고조선은 중국 유민들이 가진 철기 문화가 필요(당기는 요인)해 이주가 이뤄졌다는 식의 설명이다.
외래계 유물은 ‘외래인들이 단기간 외교 등의 용무로 가져와서 자신들이 사용하고 남긴 것이나 한반도인에게 증정한 것’과 ‘한반도인이 외국으로 가서 선물받았거나 구해온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야요이 토기는 외래인이 한반도로 가져왔거나, 한반도에서 만든 것이다. ‘울산-김해-사천’으로 이어지는 동남 해안 일대에서 기원전 1세기 전후 것으로 보이는 야요이 토기가 많이 발굴됐다. 박물관은 “일본 열도 사람들이 (한반도) 동남부 지역 출몰을 넘어 집단 이주·정착·공존한 증거”라고 했다. 전시에는 전남 고흥군 길두리 안동 고분에서 출토한 ‘갑옷과 투구’도 내놓았다. 이 유물도 백제 것인지, 일본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박물관은 이 역시 정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백제 것이 일본 것에 영향을 끼쳤든, 그 반대이든) 일본과의 교류의 흔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박물관은 이번에 국보 2건과 보물 6건 등 172건 253점을 전시한다. 국보는 ‘황남대총 금목걸이’와 ‘구미 봉안동 금동보살입상’이다. 제1부 ‘낯선 만남’, 제2부 ‘스며들다’, 제3부 ‘외연을 넓히다’, 제4부 ‘다양성을 말하다’로 구성했다. 박물관은 다양한 국적과 인종,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 간의 새로운 관계망도 고려했다고 한다. 박물관은 “1998년 30만명이던 체류 외국인 숫자는 2020년 기준 250만명을 넘어섰다. 이들 모두가 새로운 의미의 ‘우리’를 만들어간다”고 했다. 이동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다문화 가정이 늘어난다. 경주도 2019년 기준 체류 외국인이 1만9000명을 넘어섰다. 경주 인구의 7.9%이다. 고대사 유물을 통해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다시 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사회가 발전한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이런 취지를 담은 영상을 상영하는 공간은 다양성·공존을 상징하는 모자이크로 꾸몄다.
경주|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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